대법원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20년만에 재심결정

"사건 당시 국과수 감정결과 일부 허위로 드러나"

입력 : 2012-10-19 오후 8:33:49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이른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재심결정을 내렸다. 사건 발생 21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지 20년만이다.
 
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19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재심사유가 있다고 보고 검사의 재항고를 기각, 재심 개시결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강씨에게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사주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뒤 징역형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한 강기훈(48)씨가 법원으로부터 명예회복을 위한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최초 판결에서 유죄 증거로 채택됐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감정인들의 증언이 허위였는지 여부, 그리고 강씨 필적이라며 당시 제출된 전대협 노트와 비교해볼 때 최근 제출된 강씨의 필적문서에 대한 새 감정결과를 '명백한 무죄증거'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재심대상판결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속 문서감정인들의 공동심의에 관한 증언 내용 중 일부가 허위임이 증명됐다"며 "이는 허위의 증언에 대해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위증죄의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420조 2호 소정의 재심사유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원심이 당시 유서가 강씨의 필적이 아니라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감정의뢰 결과에 대해 충분한 신빙성이 뒷받침 되지 않는데도 섣불리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보고 이에 대한 재심사유가 있다고 본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문서감정결과가 유죄의 증거로 제시됐던 문서감정결과를 전면적으로 뒤집기에는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당시 국과수 소속 문서감정인들의 증언이 일부 허위로 인정되는 만큼 재심을 개시한 원심 조치는 결과적으로 정당하다"고 밝혔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1991년 5월 발생한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국 부장으로 있던 김기설씨는 서강대 본관 5층 옥상에서 시너를 몸에 뿌리고 불을 붙인 뒤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건물 아래로 투신한 뒤 병원으로 후송 중 사망했다.
 
검찰과 경찰은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씨가 후배인 김씨에게 분신할 것을 사주했다고 결론 낸 뒤 강씨를 기소했다. 검경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김씨의 두장짜리 유서를 제시했다.
 
검경은 김씨가 전대협 활동 당시 적은 노트의 필적을 제시하며 유서의 필적이 김씨가 아닌 강씨의 것이라고 주장했고, 국과수도 강씨의 필적이라는 감정결과를 내놨다. 검찰은 자살방조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김씨를 기소했으며 1·2심 재판부는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6월을 선고했다. 대법원 역시 1992년 7월 김씨의 상고를 기각해 형이 확정됐으며 김씨는 1994년 8월 만기 출소했다.
 
이후 김씨는 2006년 4월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으며 2007년 위원회가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김씨는 서울고법에 재심을 신청했으며 서울고법이 이를 받아들이자 서울고검 검사가 재심사유가 없다며 재항고를 제기했다.
 
재심은 재심개시결정을 내린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권기훈)에서 담당하며, 재판부는 유죄 증거로 제출된 문서감정결과와 김씨가 무죄를 주장하며 증거로 제출한 새 감정결과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를 가려 김씨의 유무죄를 판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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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