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정수장학회 발언이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박 후보는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수장학회가 부일장학회 소유주 김지태씨의 재산을 강탈한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 "부일장학회가 이름을 바꿔 정수장학회가 됐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승계한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박 후보는 "고(故) 김지태씨의 헌납 재산이 포함된 것이 사실이지만, 국내 독지가와 해외 동포들까지 많은 분들이 성금과 뜻을 더해 새롭게 만든 재단"이라고 설명해 강탈이 아니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사실 이 같은 박 후보의 입장은 기존의 입장에서 변화가 없는 것이었다.
박 후보는 지난 7월 10일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는 노무현 정권이 '바로잡아야 한다'며 5년 내내 모든 힘을 기울였던 일"이라며 "만일 거기에 잘못이 있거나 안 되는 일이 있었다면 그 정권에서 이미 해결이 났을 것이다. 잘못이 없으니까 못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즉 노 전 대통령 집권 시절에도 어찌 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간 문제였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는 게 박 후보의 해석이었다. 이번 기자회견 내용도 결국 지난 7월에 밝힌 입장을 재탕한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참여정부 5년의 기록'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 정수장학회에 대해 "나는 정수장학재단을 장물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거 돌려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고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통령이 되고 그걸 어떻게 돌려줄 방법을 백방으로 모색해봤는데 합법적인 방법이 없더라구요"라고 회고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또 "군사정권 시절엔 남의 재산을 강탈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장물을 되돌려줄 힘도 없는, 권력을 갖고 있는 것이 지금 정부죠"라며 "세상이 바뀌는 과정에서 과거사 정리가 안 된 채로 권력만 민주화되고 힘이 빠져버리니까 기득권 가진 사람들, 특히 부당하게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한테 참 좋은 세상이 돼버렸죠. 그런 것이 참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라고 심경을 밝혔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정수장학회 재산을 원래 주인인 고 김지태씨 유족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는 특별법 등이 필요하지만, 당시 집권 여당 입장에서 야당의 대표이자 유력한 대선 박 후보를 상대로 "정치탄압"을 한다는 논란이 생길 것이 뻔해서 문제제기 자체를 못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참여정부는 정수장학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 7월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와 2007년 5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를 통해 진실규명 작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양 위원회는 정수장학회의 불법성을 확인하고 각각 ▲정수장학회를 '재산의 사회환원'이라는 김지태씨의 유지를 되살릴 수 있도록 쇄신해야 하며, 이를 위해 사회적 공론의 장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부일장학회가 국가에 의해 '강제헌납'됐기 때문에 재산을 원 소유주에게 돌려주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은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할 뻔 했지만 부일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된 덕분에 부산상고(현 개성고)를 다닐 수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