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을 하지 않았더라도 위협적인 분위기에 눌려 반항하지 못하게 한 상태에서 여성을 성폭행했다면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강간죄에서 피해자가 반항하기 현저히 곤란한 상태를 유발하는 폭행 및 협박의 범위를 비교적 넓게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상급심의 판결이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9부(재판장 김주현)는 보험설계사를 집으로 유인해 강제로 성폭행한 혐의(강간)로 기소된 김모씨(57)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과 정보공개 5년을 함께 명령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보통체격의 건장한 남자인 반면 피해자는 몸무게 40kg정도의 다소 연약한 여성이었고, 당시 사건 장소에는 피고인의 집으로 두 사람만 있었던 점, 피고인은 상반신에 상당한 범위의 화상흉터가 있어 피해자로서는 위협적인 분위기를 느껴 피고인에게 쉽게 반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같은 당시 상황과 강간죄의 폭행이 반드시 신체적 손상을 동반해야 하는 것은 아닌 점 등을 종합해보면 피고인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을 행사해 피해자를 강간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보험설계사 최모씨(42·여)에게 월 80만원짜리 보험을 들어주겠다고 꾀어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였다. 보험계약 설명을 들은 뒤 계약서에 사인한 김씨는 갑자기 자신의 상반신에 있는 커다란 흉터를 드러내면서 "이 상처가 문신지운 상처다. 내가 예전에 조폭이었다"며 최씨에게 욕실에 들어가 씻고 나오라고 말했다.
이에 최씨는 "생리중이니 하지 말아달라"고 했으나 김씨는 주먹으로 때릴 듯한 자세를 보이면서 최씨를 욕실로 밀어넣었고, 씻고 나온 최씨를 침대로 밀쳐 넘어뜨린 뒤 강제로 성폭행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강제로 피고인과 성관계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피해자의 팔, 다리에 상해의 흔적이 없고 사건 직후 피고인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했던 점 등에 비추어 반항이 억압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의 폭행·협박 상태에서 강제로 성폭행 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