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왼쪽)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오른쪽)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검찰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이른바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 대한 증거자료를 다수 확보하는 등 원 전 원장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름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지난달 30일 이뤄진 국정원 압수수색과정에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관련 자료 다수를 확보했다. 검찰이 확보한 증거자료는 최초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공개한 25건보다 더 많다.
이 자료에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을 종북세력 또는 내부의 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또 이 전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칭송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를 두고 원 전 원장이 정치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을 위반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대선 당시 국정원의 정치개입 또는 선거개입 의혹을 부른 ‘댓글’사건 외에 원 전 원장이 국정원법을 위반했다는 또 하나의 혐의가 나온 셈이다.
검찰은 지난달 29일 원 전 원장을 소환해 ‘댓글’ 사건에 대한 개입 및 지시 여부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원 전 원장은 당시 이 같은 의혹을 부인했으나 검찰은 최소한 보고를 받은 사실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과 관련 이 전 대통령의 이름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장-대통령 독대를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국정원장은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은 대통령을 독대하고 국내외 여러 현안 정보를 보고해 왔다.
복수의 정보기관 출신 인사들은 “국정원장의 독대보고 내용은 둘만 아는 것”이라면서도 “그 당시 보고 내용이 무엇이었느냐는 것이 비밀일 뿐 북한을 비롯한 국내외 정보동향은 물론, 민심과 여론 동향도 필수 보고사항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원 전 원장이 정치개입으로 국정원법 위반 논란이 있는 제주도 해군기지 상황에 대한 국정원 대응 계획이나 4대강 사업에 대한 민심동향, 대선 여론 등에 대한 국정원의 활동 계획 등을 보고했다면 이 전 대통령도 국정원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는 전문가들 의견이 많다.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차장은 "원 전 원장이나 국정원의 일련의 행위가 법 위반 행위이니만큼 상급자로서 그 같은 행위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으면 공범이 성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급자는 업무지시와 관련한 관리·감독권과 의무를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보고 받고도 그냥 넘어갔거나 묵인했다면 국정원법 위반의 방조행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형사법 전문의 중견 변호사도 “이 전 대통령이 묵인에 그치지 않고 원 전 원장의 보고를 듣고 ‘열심히 해봐라’는 식으로 격려했거나 암묵적으로 지원했다면 국정원법 위반의 교사로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지적은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조순형 전 자유선진당 의원은 지난 2일 PBC <열린세상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원 전 원장이 인터넷상의 활동을 소상히 보고했는지가 관건이 되겠지만 그것이 확인된다면 이 전 대통령도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관련법상 국정원은 대통령의 지시 감독만 받는다고 되어 있다”며 “국정원에 대해서는 대통령에게 전적인 감독책임이 있는 만큼 국정원이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의 책임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국정원 직원의 ‘댓글’ 사건과 관련해서는 원 전 원장이 ‘댓글’ 등 선거개입 행위를 직접 지시했거나 깊이 관여했다면 이 대통령 역시 국정원법 위반 뿐만이 아니라 공직선거법 위반의 공범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국정원 직원 2명과 일반인 1명 등 관련자 3명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하면서 혐의를 정치개입에 의한 국정원법 위반으로만 봤다.
그러나 수사가 계속될수록 국정원 직원들의 추가적인 활동 내용이 감지되고 있고, 댓글이 아닌 적극적인 선거개입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정황들도 포착되고 있다.
한편 국정원 심리정보국 직원들의 행위가 선거법 위반 행위인지는 법리적으로 검토를 거쳐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위가 ‘댓글’이나 ‘찬반’표시냐 아니면 적극적인 글 작성이냐에 따라 개입여부가 판가름 날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공직선거법 86조는 “정당의 정강·정책과 주의·주장을 선거구민을 대상으로 홍보·선전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이를 어길 경우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해석하고 있다.
박주민 민변 사무차장은 “여기에서의 ‘홍보·선전’ 행위는 효과적인 면에서 판단할 것이지 댓글을 달았느냐, 직접 글을 작성했느냐는 핵심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7일 주례간부회의에서 “일부 혐의(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임박한 만큼 특별수사팀을 중심으로 검찰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비상한 각오로 사건의 진상과 죄책 여부를 신속하고 철저하게 규명하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