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사마리아인 사건' 노숙자 유기 공무원 무죄 확정

입력 : 2013-09-13 오후 12:25:18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현대판 ‘사마리아인 사건’으로 불리고 있는 ‘한국철도공사 노숙자 방치 사망사건’에서 혹한에 노숙자를 끌어내 사망케 한 직원들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13일 혹한에 노숙자를 방치한 혐의(유기)로 기소된 한국철도공사 서울역 역무원 박모씨(47)와 공익요원 김모씨(30)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심이 유지한 1심 판결이유를 기록에 비춰 살펴보면, 원심이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거가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유지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서울역 내근과장인 박씨는 2010년 1월15일 오전 7시30분쯤 역사 순찰을 돌다가 2층 대합실 물품보관함 앞에서 만취상태로 갈비뼈 골절상을 입은 노숙자 장모씨가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박씨는 같이 순찰을 돌던 부하직원에게 장씨를 밖으로 내보내라고 지시했고 A씨는 물품보관함에서 20m정도 떨어진 서울역 2층 대합실 2번출구 밖 대리석 바닥으로 옮겨졌다. 당시 바깥 온도는 영하 6.5℃로, 체감온도는 영하 9.7℃에 이를 정도로 혹한이었다.
 
이어 사고 당일 서울역 2번 출구 근처 서울역 광장에서 제설작업을 하던 김씨는 역사로부터 ‘서울역 2번 출구 앞에 노숙자가 쓰러져있으니 확인해 보라’는 무전을 받고 장씨를 찾아내 후배 공익요원과 함께 휠체어에 태운 뒤 데려다 놓을 곳을 찾다가 서울역사 구름다리 아래에 옮겨 놓았다.
 
장씨는 같은 날 12시22분쯤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는데, 부검결과 장시는 혈중알콜농도 0.157%의 만취상태로 사인은 동사(冬死)가 아니라 오른쪽 갈비뼈의 다발성 골절, 오른쪽 폐의 파열이었다.
 
검찰은 박씨와 김씨를 철도공안 경찰관 또는 119 구급대에 신고하거나 역사부근의 노숙자 구호시설인 ‘다시서기센터’로 이동시키는 등 적절한 구호조치를 취해야 할 법률상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기했다며 기소했다.
 
1, 2심 재판부는 "우리 형법은 유기죄를 규정함에 있어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소위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기본형식으로 취하지 아니하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 있는 자'만을 범죄주체로 설정함으로써 신분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피고인들의 법률상 구조의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박씨와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한편, 1심 재판을 맡았던 권태형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판결문 말미에 '판결을 마치며' 라는 제목 아래 “노숙자였던 망인은 이승에서의 마지막인 이날 참으로 고달픈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성치 않은 몸으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여기저기를 타인에 의해 부축을 당하거나 휠체어에 실려 다니면서 결국에는 차가운 곳에 버려져 이승을 하직하였으니, 그 심신의 피로가 오죽했을까 싶다”고 적었다.
 
권 판사는 “입법자의 결단이 있는 현행 형법 하에서 피고인들에게 유기죄의 형사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고 하겠지만, 피고인들로서는 자신들의 형사책임을 떠나 망인의 죽음 앞에 도덕적인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며 “어쩌면 피고인들은 자신들이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망인이 사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권 판사는 이어 “이 사회가 만들어낸 사람들이면서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사람들인 노숙자의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앞으로도 함께 계속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 중 하나”라며 판결문을 맺었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사진=뉴스토마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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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