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수천억원대의 횡령·배임혐의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건에서 대법원이 그룹총수의 경영판단을 엄격히 해석해 배임행위를 단호히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 향후 유사소송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26일 특경가법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에 벌금 51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김 회장 배임혐의 유죄 인정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한 이유는 유·무죄를 다시 판단하라는 것이 아니라 배임행위의 수와 배임액 산정을 더 구체적으로 심리하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우선 김 회장이 한화그룹 계열사를 통해 다른 부실계열회사의 금융기관 채무를 부당하게 지급보증을 서도록 한 행위는 원심과 같이 배임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그 부실계열회사가 이미 다른 계열사들이 지급보증한 채무를 갚기 위해 다시 돈을 빌릴 때 계열사로 하여금 또 다시 지급보증을 하게한 것에 대해 원심과는 달리 하나의 배임행위라고 판단했다.
또 김 회장이 한화그룹 계열사 소유의 부동산을 다른 위장 부실계열회사에게 싼 값에 넘기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배임으로 인정하면서 배임액 산정의 근거가 되는 부동산 감정이 잘못됐다며 이에 대해 다시 심리하라고 판단했다.
◇원심 무죄판단 부분 유죄로 판단
대법원은 오히려 이같은 부동산 저가매도가 배임에 해당할 여지가 있는 이상 그 부동산을 자산으로 가진 회사와 계열사 등을 인수합병하는 행위 등은 별도의 배임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와 관련된 김 회장의 일부 행위를 무죄로 본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김 회장의 사건에서 한화그룹 차원의 부실계열회사 지원행위가 경영판단에 따라 이뤄졌기 때문에 무죄라는 김 회장 측의 주장을 여러 차례에 걸쳐 단호하게 배척했다.
대규모 기업집단 내에서 총수가 정당한 절차 없이 다른 계열회사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면서 부실 계열회사에 대한 불법적인 지원행위를 하면 경영판단의 원칙으로 보호받을 수 없고 배임죄로 처벌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대규모 기업집단을 구성하는 개별 계열회사도 별도의 독립된 법인격을 가지고 있는 주체"라면서 "그 각자의 채권자나 주주 등 다수의 이해관계인이 관여되어 있고 사안에 따라서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집단이익과 상반되는 고유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부실계열사 불법지원행위 허용 안돼"
특히 "이번 한화그룹 계열회사들의 지원행위는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계열회사 신고도 하지 않은 위장 부실계열회사에 대해 이뤄진 것"이라며 "이를 허용하면 각종 법령상 제한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은 지원계열회사의 선정에 있어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었고 지원행위로 지원계열회사가 부담하게 될 위험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원계열회사 안에서도 이사회 결의 등 정당한 절차 없이 그룹 외부에 지원사실을 은폐하면서까지 그룹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지원행위가 이루어졌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어 "나중에 연결자금이 회수되거나 지급보증이 해소됐더라도 영업수익의 확대나 투자 유치 등 정상적인 경영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 별도의 배임죄 성립 여부가 문제 되는 계열회사 간의 부당한 내부거래 등 변칙적인 방법을 통해 이루어졌다"며 "이는 경영상 판단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사례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업무상배임죄에 있어서 그 요건으로서 재산상 손해의 발생여부에 관해 더 엄격하게 세밀하게 입증을 요구한 것"이라면서 "단지 파기환송했다는 이유로 정당한 절차 없이 부실계열사를 지원하는 행위를 경영상 판단으로 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사진=뉴스토마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