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균 한마디에 뿌리채 흔들린 검찰 수사..법정에선?

조 전 비서관, "삭제지시 없었다" 검찰 유일 증거 정면반박
검 "盧 삭제 지시는 보안성 강화 때문..국정원에 1급 비밀 보관"
국정원 5년만에 평문 공개..15년 못보는 기록물보다 보안성 뒤져

입력 : 2013-11-18 오후 6:23:22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2007년 남북정상 회의록'을 무단 삭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명균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삭제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밝힘으로써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김광수)는 조 전 비서관과 그의 직속상관인 백종천 전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위반 및 공용전자기록등손상 혐의 등으로 지난 15일 불구속 기소했다.
 
대통령기록관으로 당연히 이관되어야 할 대통령기록물인 회의록을 고의로 삭제했다는 게 혐의 내용이다.
 
검찰은 지난 15일 수사결과 발표에서 "조 전 비서관이 회의록 파일을 삭제하고 회의록 문건을 파쇄한 행위에 대해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했다"고 밝혔다.
 
조 전 비서관의 회의록 초본 파일 삭제 내지는 파쇄 혐의는 '초본의 문서성' 등 이번 사건의 쟁점을 연결하고 있는 핵심 중의 핵심 쟁점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대통령기록물을 기록관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정해놨지만 이관하지 않았을 경우 별도의 처벌규정은 없다.
 
다만, 14조에 손상·은닉·멸실 또는 유출하거나 국외로 반출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과실로 대통령기록물을 멸실하거나 일부 내용이 파악되지 못하도록 손상시킨 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회의록이 이관되지 않은 사실은 검찰은 물론 참여정부 인사들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이관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기 때문에 검찰은 '고의 삭제’에 무게를 두고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지난 15일 서울고검 브리핑룸에서 '2007년 남북정상 회의록'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조승희 기자)
 
이에 대해 조 전 비서관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께서 삭제지시 및 문서이관을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일관되게' 주장했다는 검찰의 발표내용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참여정부 측 변호를 맡고 있는 박성수 변호사(참여정부 법무비서관)는 "검찰이 지난 1월 조 비서관의 부정확한 진술을 토대로 해서 메모보고를 증거로 삼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조 전 비서관은 2008년 2월14일 "동 '회의록'의 보안성을 감안, 안보실장과 상의하여 이지원의 문서 관리카드에서는 삭제하고, 대통령님께서만 접근하실 수 있도록 메모 보고로 올립니다"라는 메모보고를 노 전 대통령에게 올렸다. 노 전 대통령의 회의록 초본 수정지시를 받은 뒤 올린 보고이다.
 
박 변호사는 "조 비서관이 실무적 차원에서 자체 보고한 것인데 검찰에서는 대통령이 지시한 바에 따라 삭제한 것으로 일방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사자인 조 전 비서관은 "'대통령께서만 접근하실 수 있도록'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미 회의록 최종본은 필요한 분들에게 보고된 상황에서 메모보고의 성격상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며 "대통령기록관에 지정기록으로 이관될 경우에도 전임 대통령만 열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가 있는 표현은 아니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고 밝혔다.
 
삭제지시의 핵심 근거인 '메모보고'를 두고도 검찰과 조 전 비서관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만큼 이 부분도 노 전 대통령이 삭제지시를 내렸다는 검찰 추정과 함께 법정에서 치열하게 다퉈질 전망이다.
 
검찰은 또 노 전 대통령이 삭제지시를 내렸다는 것을 전제로 그 동기가 '보안성 강화'에 있다고 보고 있지만 여러 논란이 벌써부터 불거지고 있다.
 
지난 15일 검찰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삭제지시를 한 동기에 대해 "수사사항이 아니다"라면서도 "조 전 비서관이 보안상의 이유로 삭제를 지시했다고 진술하고 있고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시절 비밀 2급으로 등재한 회의록을, 1급으로 등재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대통령기록물은 15년이 지나면 모든 국민들이 다 볼 수 있다"며 "노 전 대통령께서는 (국정원에서)2급으로 내려간 다음에 발견될 것을 생각 못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의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노 대통령은 회의록을 15년이 지나면 일반에 공개되는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는 것 보다 1급으로 비밀등급을 상향조정해 일반에 공개되지 않도록 보안성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1급비밀 보관 1년여만인 2009년에 회의록을 2급으로 재분류했고 남재준 국정원장은 4년만인 올해 6월 3급이나 대외비도 아닌 평문으로 재분류해 세상에 공개했다.
 
지정기록물로 지정하면 최소한 15년은 후임 대통령 마저도 볼 수 없다. 그러나 국정원 1급 비밀문서는 대통령은 물론 국정원장, 검찰총장 등 비밀취급인가 1급을 가진 안보관련 실무자들은 언제든 열람이 가능하다. 보안성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면 대통령지정기록물로만 지정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얘기다.
 
◇조명균 전 비서관(사진 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17일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검찰의 수사결과를 반박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의록 삭제를 지시했다'는 검찰의 수사결과를 정면으로 부인했다.(사진=박수현 기자)
 
참여정부측은 노 전 대통령이 회의록을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등재하지 않은 것은 북한도 동일한 문건을 가지고 있고 협상시 이용할 것이기 때문에 열람이 쉬운 공공기록물로 지정해 1급 비밀로 국정원에 보관시켜 후임 대통령이나 담당자들이 언제든 열람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조 전 비서관의 회의록 삭제 동기가 되는 노 전 대통령의 지시가 보안성 강화 때문이라는 검찰의 논리는 법정에서 치열한 공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초본의 '문서성'을 두고도 검찰과 참여정부 측의 한 치 물러섬 없는 공방이 예상된다.
 
검찰은 삭제된 초본 역시 하나의 완성된 문건으로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그 근거로 국가기록원의 유권해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참여정부측은 초본은 최종본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과정 또는 절차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문서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회의록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회의 '국회회의록 발간 보존 등에 관한 규정'에는 최종본을 제외한 속기록 초안과 수정본은 '폐기한다'고 명시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규정 15조는 '원고 등의 보존'과 관련해 "회의록원고와 속기원문 등은 회의록이 발간된 후 폐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초본의 문서성이 인정된다면 대통령기록물의 폐기가 되고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 전 비서관 등에 대한 형사처벌은 어렵게 된다.
 
검찰이 초본도 대통령기록물이라고 본 만큼 이에 대한 유권해석을 해준 국가기록원 담당자들의 증인채택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쟁점과 관련해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초본을 '결재'했다는 점을 문서성의 근거로 들고 있다. 기록물 전문가들 역시 최상위 결재권자가 결재를 했을 때 문서성이 완성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결과를 보더라도 초본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이지원을 통해 '결재'했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열람'했을 뿐이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열람'을 통해 문서를 확인했기 때문에 결재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참여정부 측은 '열람'후 수정지시를 했기 때문에 '반려'로 봐야 한다며 결재된 문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 전 비서관 등에 대한 사법처리를 두고도 형평성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서 원 전 원장을 기소하는 대신 그의 지시를 받은 중간 간부급들은 '기소유예' 처분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기록물 폐기 문제가 더 중요하다"며 "조 전 비서관 등은 삭제행위를 주도적으로 했고, 더구나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진술이 명확하지 않아 기소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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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