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물논란이 거세다. 핵심은 정수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다. 역삼투압이냐, 중공사막이냐, 죽은 물이냐, 깨끗한 물이냐 등 반론이 반론을 낳으면서 논쟁은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시장은 혼탁해졌다. 시장 주도권을 쥔 정수기 제조사들이 해당 논란을 예의주시하며 반격의 카르텔을 형성했다. 소비자들의 혼란도 끊이질 않고 있다. 상호비방이 난무하면서 불신은 커졌다. 강요받은 소비자의 선택권도 문제다. 이는 이중부담을 낳고 있다. 논란의 시작과 끝을 따라가 본다.(편집자)
"정수기요? 당연히 있죠. 역삼투압 정수기에는 미네랄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는 아이들에게만큼은 생수를 사 먹이고 있어요."
두 아들을 키우는 김씨(여·34세)는 가정에 역삼투압 정수기를 두고 있으면서도 생수를 따로 사 먹는다. 정수기 물은 김씨와 김씨의 남편이 먹고, 음식을 조리하는 데 쓴다. 정수기 렌탈비용은 대략 월 3만5000원, 한 달 생수 구입비용이 3만원 가량으로 6만원 넘게 식수에만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주부들이 모여 있는 포털 게시판이나 유명 카페 등에는 먹는 물을 걱정하는 주부들이 부쩍 많아졌다. 김씨처럼 제대로 된 물을 먹기 위해 '이중부담'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도 다수다. 정수기 보급률이 60%에 육박하는데도, 생수시장이 나날이 성장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다. 역삼투압 정수기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소비자 역시 혼란에 빠졌다. 이는 곧 추가비용 지불이라는 이중부담으로 연결된다.
◇정수기를 사용하면서도 별도로 생수를 구입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사진=뉴스토마토)
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는 정수기는 필터의 방식에 따라 역삼투압(RO·Reverse Osmosis)과 중공사막(UF·Ultrafiltration)으로 구분된다. 이 두 가지 방식이 전체 시장의 80%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코웨이와 청호나이스가 역삼투압 방식으로 정수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동양매직과 쿠쿠전자, 교원웰스, LG전자 등 후발주자들이 중공사막 방식의 정수기를 들고 나오면서 두 방식 간 대립구도는 명확해졌다. 후발주자가 점유율을 늘려가면서 역삼투압 방식에 대한 도전 역시 거세지는 양상이다.
지난해 방영된 울산MBC 특별기획 <'워터 시크릿'-미네랄의 역설>, SBS스페셜 <물한잔의 기적> 등을 통해 미네랄이 없는 물의 위험성과 역삼투압 정수기에 대한 논란 등이 안방을 점령했다. 심지어 <역삼투압 정수기가 사람 잡는다>는 책이 출간됐고, 안티 카페 등도 생겨났다.
◇깨끗한 물이냐, 죽은 물이냐..후발주자 마케팅 결과?
◇역삼투압 필터를 장착한 코웨이의 스스로살균얼음정수기
역삼투압 방식은 삼투압의 반대이론을 적용한 것으로, 대부분의 중금속 무기물질과 나트륨, 질산성 질소와 유기오염 물질 등을 제거하는데 탁월하다. 역삼투압 정수기를 거치면 물이 산성화되고, 오염수가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공사막 방식은 혈액투석을 위한 신장투석기에 사용하는 중공사를 응용한 것으로, 바이러스와 세균 등 불순물을 걸러내고 미네랄은 남겨둔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중금속과 환경호르몬은 제거하지 못한다. 미네랄은 칼륨과 칼슘, 나트륨, 마그네슘 등으로 신진대사 촉진에 기여한다.
역삼투압 방식을 공격하는 쪽에서는 이 방식은 미네랄이 없는데다 증류수에 가까운 물로 금붕어도 살 수 없는 '죽은 물'이라고 비판한다. 깨끗한 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에서 물 낭비 또한 많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
또 산성에 가까워 오랜시간 복용하면 각종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한 연구원은 이 물에 대해 "과학 실험시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을 만큼 모든 물질이 제거된 초순수에 가까운 물"이라고 전했다. 깨끗한 물만 강조하다 보니 물의 생명력은 사라졌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역삼투압 정수기 업계에서는 굳이 정수기 물을 통해 미네랄을 섭취할 필요가 없다고 항변한다. 물에서 섭취할 수 있는 미네랄은 한정돼 있어 차라리 멸치 한 마리를 먹는게 낫다는 주장이다. 장기간 복용으로 몸이 산성화된다는 비판에는 "산성을 띄는 음식이 많은데 유독 '물'에만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억울하다"고 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물에 영양분을 따지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중공사막 방식에 대해 미네랄은 섭취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유해물질인 중금속이나 환경호르몬이 섞여 위험성은 더 크다고 공격한다. 역삼투압 방식이 유기화학물질 및 중금속류 등 총 41개 항목에 대한 특수정수성능을 충족하는 물마크를 획득했지만 중공사막 필터는 특수정수성능이 아닌 의무항목의 일반정수성능밖에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얘기다.
역삼투압 정수기를 옹호하는 쪽은 결과적으로 "얼마나 많은 수의 불순물을 걸러내느냐는 것이 정수기의 존재이유이자,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역삼투압 정수기가 정수기의 본질에 부합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수기라는 주장이다.
역삼투압 정수기를 생산하는 한 제조사 관계자는 이 같은 수질 논란에 대해 "후발주자들의 마케팅 포인트일 뿐"이라면서 "더 이상의 의미를 둬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역삼투압이 아닌 중공사막을 강조하고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 중 하나로 논란을 부추기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판매자들간 상호비방에 '시장 혼탁'
역삼투압 정수기와 중공사막 방식을 놓고 격론들이 오가는 가운데 업계의 마케팅 전쟁도 만만치 않다. 각각 다른 포인트로 소비자들에게 물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중공사막 필터가 탑재된 동양매직 정수기
교원그룹은 '실컷 놀고 미네랄 실컷'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은 보존하는 정수기라고 광고하고 있다. 아이들이 뛰노는 장면 등으로 광고를 구성해 '성장기의 어린이에게 좋은 물'을 강조했다. 정수기를 결정하는 부모, 특히 주부의 심리를 자극했다.
코웨이의 경우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하자'는 캠페인과 광고를 진행하고 있다. 업계 선두주자로서 특정제품 광고가 아닌 '물 마시기 권장 '프로젝트를 통해 '깨끗한' 물 먹기를 권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포인트는 '깨끗함'이다.
두 진영의 마케팅 전쟁이 격화되면서 상호비방과 잘못된 정보로 소비자를 오도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인터넷 포털의 카페와 블로그 등을 통해 정수기 판매업자들이 영업전을 펼치고 있는데, 다른 정수 방식에 대한 비판이 상당한 수준이다. '물은 깨끗한 게 최고죠, 싼 거 믿을 수 있겠어요?', '미네랄 없는 물은 태아에 치명적입니다' 등등 확인되지 않은 정수기 물에 대한 정보들이 판매자 편의대로 조합되고 있다.
업계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는 "어떤 방식이 좋다 나쁘다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어 더욱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면서 "결국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것 아니겠냐"고 선택을 소비자의 몫으로 돌렸다. 시장이 야기한 논란과 부정확한 정보로 혼란이 가열된 가운데 책임과 부담 또한 소비자의 몫이란 얘기다.
때문에 이 같은 논란을 단순히 후발주자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정확한 과학적 입증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와 소비자단체, 관련 협회 등 책임 있는 기관들는 입을 꼭 다물고만 있다. 정수 방식을 둘러싼 논란과 업계 간 상호비방 속에 정작 혼란은 소비자들이 겪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