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이정희 대표 "해산청구는 서민 권리 빼앗겠다는 것"

"정치적 의견차 적대행위..민주주의 무너뜨려"

입력 : 2014-11-25 오후 6:28:30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의 최후변론이 열린 25일, 정부와 진보당측은 각 대표격인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이정희 대표가 직접 나서 공방에 총력을 쏟았다. 
 
이 대표는 이날 최후변론에서 "진보당해산청구는 진보당에 투표하면서 자신들도 대한민국의 주인이 되기를 바랐던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권리와 투표의 권리를 완전히 빼앗겠다는 것"이라며 정부를 맹렬히 비판했다. 
 
이 대표는 "정부 주장의 핵심은 연방제 통일을 이루고 나면 북한식 사회주의를 채택할 것이라는 데 있다"며 "근거 없는 추측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는 북의 제도일 뿐 남의 제도가 아니고 남의 제도도 될 수 없다"고 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어 "정부는 민주노동당 강령에 도입된 '진보적 민주주의'의 연원이 김일성에게 있다고 주장하나 거슬러 올라가면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과 의정원이었음이 확인된다는 사료와 현대사 연구자의 증언이 이 법정에 증거로 제출됐다"며 "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마저 김일성의 사주를 받은 집단으로 매도하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하는 이 대표의 최후변론 전문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통합진보당 해산청구사건을 심리해 오신 헌법재판관님을 비롯한 헌법재판소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를 지켜야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이 재판을 지켜보신 분들과 어려움을 이기고 법정 안팎에서 진실과 정의를 말해주신 분들께 특별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정치에 들어서기 전, 저는 여러 번 청구인 대리인의 위치에서 헌법재판소에 위헌적 현실을 바로잡아주실 것을 요청드렸고, 이 요청이 받아들여진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의 성과인 우리 헌법을 법전 속에서 일으켜 세워 눈앞의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법률가인 저에게는 이것이 최고의 보람이고 자긍심이었습니다.  
 
저는 헌법을 우리 사회 다양한 의견의 공통의 출발점이자 구성원 상호간에 토론과 합리적 해결을 가능하게 하는 기준자로 봅니다. 헌법은 민주주의의 확장, 사회적 다원성과 정치적 다양성의 보장,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결사의 자유의 확대라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 방향으로 해석 적용됨으로써 헌법은 더욱 발전하며 권위를 높여갑니다.  
 
제가 가진 헌법에 대한 신뢰는 헌법을 만들어낸 국민에 대한 신뢰이고 헌법을 발전시킬 역사에 대한 신뢰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정치를 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제가 진보정치의 길을 지키도록 해준 버팀목이기도 합니다.  
 
제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들어선 이유도, 헌법을 현실로 만들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미군범죄 피해자들, 미군폭격장 인근 주민들, 미군기지 수용지 주민들을 도와 소송을 맡았습니다. 우리 정부가 형사재판권도 환경주권도 전시작전권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범죄와 환경오염에 노출되며 전쟁의 위험에 내몰리는 국민의 피해로 나타난다는 것을 저는 피해자들을 변호하며 똑똑히 보았습니다. ‘대외적으로 독립, 대내적으로 최고’라는 주권의 본모습을 미국과 관계에서도 온전히 찾아야 대한민국이 국민의 인권과 평화로운 생활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 변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치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아니었다면 제가 정치를 시작하는 일은 아예 없었을 것입니다. 거대 정당은 여든 야든 금권과 비리, 편법에서 벗어나있지 못합니다. 정치하려면 돈 써야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정치는 타협이라는 말이 격언처럼 통했습니다. 명예와 권력을 좇아 모이는 곳, 권력층과 사회주도층의 비리에 슬쩍 눈감고 부당한 특혜를 관행이라 인정해주고 함께 물들어가는 곳, 타협을 위해 약자의 권리쯤은 희생시킬 줄 알아야 인정받는 곳이 기성 정치였습니다.  
 
그와 달리 민주노동당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꿈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일한 만큼 먹고 살 수 있는 세상 물려주고 싶다는, 정직하게 살아가는 노동자 농민들이 낸 돈이 민주노동당의 운영자금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에 돈이나 권력과 관련된 비리가 있을 수 없고 누가 청탁한다고 양심을 파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약자의 인권을 정치적 타협의 희생제물로 삼아 개별 정치인의 성가를 높이는 일이 허용될 수 없습니다. 소수정당이라 힘은 없지만, 잘못된 것을 관행이라 용인하거나 양심을 팔거나 자신의 권세를 추구할 유혹은 없겠다는 믿음, 깨끗하지 못한 돈의 유혹은 없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민주노동당과 함께 한 이유이고, 그래서 정치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어 제가 맞닥뜨린 현실은 말 그대로 죽음의 행렬이었습니다. 2009년 여름 쌍용자동차 정문 앞, 비인간적 경찰폭력의 현장에서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6년 동안, 25명의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이 정리해고로 내쫓겨 절망으로 죽어갔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실현시키겠다고 약속한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거듭되는 장례식마다, 이어지는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은, 노동자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빨갱이라는 이유로, 온갖 배제와 소외, 차별이 버젓이 벌어지는 사회에서는 공문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절망으로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삶을 선택할 희망의 근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정책 이전에 공약 이전에 생사의 문제였기에 더 절실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으로는 힘이 모자랐습니다. 고루하고 거친 운동권 정당이라는 시선을 받아서는 극소수세력으로 남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는 옳은 말을 할 수는 있지만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현실정치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갈라진 진보정당을 통합시키고 더 폭을 넓혀야 한다고 판단해 통합을 추진했습니다. 우여곡절을 거쳐 통합진보당을 만든 뒤,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 콘베이어 벨트를 타고 일일이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눈 돌릴 겨를도 없이 일하던 노동자가 제 손을 잡아주려고 장갑을 벗는 5초의 시간이 가장 뿌듯했습니다.  
 
“함께 살자,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절실하고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민주노동당과 진보당을 만들고 지탱해왔습니다. 이들의 꿈의 바탕에는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어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국민 모두가 다 같은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헌법 정신이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굴레, 분단의 색깔론에도 굽힘없이 모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려는 이들을, 저는 헌법 실현의 주역으로 존중합니다. 제가 어려움 속에서도 민주노동당과 진보당을 지켜온 이유는, 헌법을 실현시키려 애써온 법률가로서 저의 자긍심을 정치의 영역에서도 온전히 지키는 것은 이 당을 통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진보당은 한국정치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에게 있어 꿈을 실현할 통로이고 소망의 집결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진보당해산청구는 진보당의 존립이나 의원들의 지위를 좌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진보당해산청구는 진보당에 투표하면서 자신들도 대한민국의 주인이 되기를 바랐던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권리와 투표의 권리를 완전히 빼앗겠다는 것입니다. 진보당해산결정은 진보당을 통해 실현되어온 국민 각자의 정치적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게 된다는 점을 재판관님들께서 더욱 신중히 고려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당 국회의원으로서 제 의정활동의 원칙이자 출발점은 헌법정신의 구현이었습니다. 노동3권과 집회 결사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권 실현, 경제주체들의 조화롭고 균형잡힌 성장을 위한 국가의 경제정책 시행과 같이, 헌법규정을 법률과 정책에 실현시키는 일이 제가 한 일입니다. 기본권 관련 분야에서는 야간집회처벌조항 폐지를 담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는 등 기본권의 원칙적 보장을 주장했습니다. 반면 경제 관련 분야에서는 헌법 제37조 2항의 비례원칙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법안과 정책을 고려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처음 등장할 때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으로 관심을 모았다면, 이제는 그 법안과 정책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아야 할 때가 왔고 그러자면 37조 2항 비례성 심사를 통과해야한다고 판단했습니다. 2008년 종합부동산세법 위헌판결 이후에도 저는 헌법재판소가 비례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요소만을 종합해 기존의 세수를 회복하는 개정안을 제안했습니다.  
 
저는 2008년 9월 이후 당의 공식 정책을 총괄하는 정책위의장을 맡았습니다. 2010년 8월부터 2012년 4월까지, 2013년 3월부터 지금까지 당 활동을 총괄하는 대표로 일했습니다. 이 기간 민주노동당과 진보당 의원의 이름으로 대표발의된 법안은 모두 제 검토를 거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헌법 37조 2항을 잊은 적이 없고, 정당의 가장 중요한 활동인 법안 발의에 있어 법안이 위헌이라는 지적을 단 한 번도 받은 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헌법 11조 평등권 조항 정신에 따라 재벌 대기업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세제감면을 없애 조세형평성을 높이자는 법안 등이 정부의 일관된 재벌 대기업 위주 경제정책에 밀려 무시당하는 위헌적인 상황을 감내해야했을 뿐입니다.  
 
위 기간 당의 모든 토론은 법안과 정책, 공약, 현안 대응, 통합과 연대방침문제로 채워졌을 뿐,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니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이니 그 어떤 혁명이론도 토론의 주제가 된 일이 전혀 없습니다. 당은 혁명론을 정립하는 곳이 아니고 폭력혁명을 꿈꾸거나 준비하는 곳이 아닙니다. 현행 선거제도를 전제로 어떻게 선거에서 이길 것인가를 토론하고 선거운동을 하는 곳이고, 선거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게 될지 정책을 내는 곳일 뿐입니다.  
 
정부는 현실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당이 낸 법안과 공약, 당이 벌인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그 어느 것도 위헌이라고 하지 못하면서, 왜 당이 정립하지도 않은 혁명론에 의해 북의 조종에 따라 활동하는 위헌정당이라고 근거 없이 단정하는 것입니까. 2008년 이후 정책위의장과 당대표로서 당의 가장 중요한 활동을 총괄해온 제가 폭력혁명은 단 한 번도 시도도 준비도 논의도 한 적이 없는데, 왜 이 당이 폭력혁명을 벌일 것이라고 무단으로 추측하는 것입니까. 국정원의 위법한 정당사찰의 결과 만들어낸 내란음모조작사건이 무죄판결을 받았는데도 정당해산청구를 철회하지 않고 해산판결을 압박하는 정부의 행동은, 정부 스스로 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진보당이 지지할 만한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라, 진보당이 위헌이라서 강제해산되어야 하느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자리입니다. 진보당을 지지하는 국민은 아직은 소수입니다. 그러나 진보당이 정부의 청구로 강제해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도 소수일 것입니다. 정치적 의견의 차이를 적대행위로 몰아붙이는 행위 자체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임을 국민들도 알고 있습니다.  
 
정부는 정당해산을 청구하면서 진보당에 대한 온갖 의혹을 쏟아냈고 언론은 이를 증폭해 보도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상당수 국민은 진보당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당에 대한 지지와 신뢰는 크게 떨어졌습니다. 이미 정당해산청구 자체로 진보당은 매우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정부가 이에 더해 위헌정당해산판결을 얻어내려면 적어도 의혹과 추측, 추론이 아니라 확정된 증거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법정에서 나온 정부의 주장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의혹과 추측 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진보당이 북으로부터 받은 지령에 따라 조종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국회의원과 당대표로 일하면서 어떤 사람으로부터도 북으로부터 받은 지령이니 실현시키라는 지시를 받은 바 없습니다. 당내 어느 세력이 결정한 것이니 수용하라는 요청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강령, 당헌 개정이나 중요한 당의 결정이 있을 때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동안 당내 토론을 벌입니다. 그러고도 안건이 반려되거나 부결되기도 합니다. 2011년 9월 대의원대회에서는 통합진보당 창당관련 의안이 부결된 일까지 있었습니다. 북의 지령과 특정 세력의 결정에 따라 모든 것이 이뤄지는 당이라면 이럴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진보당이 일부 민혁당 잔존세력에 조종되는 정당이라는 정부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오랜 당활동가들로 구성된 의결기구에 권한이 집중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정당 사상 유일하게 당원 누구나가 참여해 당의 정책과 앞날을 토론하는 정책당대회를 7년째 이어오는 곳이 민주노동당이고 진보당입니다. 그러고도 늘 당내 소통이 부족하고 당 지도부가 일방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신입당원과 평당원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대의원 추첨제 도입을 검토하기로 하는 등 계속 새로운 소통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정부 주장의 핵심은 진보당이 연방제 통일을 이루고 나면 북한식 사회주의를 채택할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근거 없는 추측입니다. 북한식 사회주의는 북의 제도일 뿐 남의 제도가 아니고 남의 제도로 될 수도 없습니다. 정부는 북한식 사회주의의 핵심이 수령제라고 주장하는데, 박정희 정권의 유신장기집권과 전두환 정권의 체육관 선거를 거부하고 광주항쟁과 6월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피흘려 쟁취하고 단임제까지 명시했으며 수평적 정권교체를 만들어낸 우리 국민이 이 성과를 버리고 수령제를 선택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진보당의 간부 및 당원들 다수가 이 민주항쟁에 헌신하고 참여한 사람들이고 진보당은 강령에서부터 광주항쟁과 6월항쟁 등 민주항쟁의 전통 계승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진보당의 통일방안은 통일의 완성단계에서 총투표로 통일헌법을 제정하자는 것인데, 과연 우리 국민 누가 수령제를 대한민국에 도입하는 헌법안에 찬성하겠습니까. 그러니 진보당의 통일방안에 따른 통일헌법으로 대한민국에 북한식 사회주의가 이식될 가능성은 현실에서 전혀 없는 것입니다. 정부의 주장은 너무나 당연해 언급하지 않은 것을 숨은 목적이 있다고 몰아붙이는 질낮은 모략입니다.
  
진보당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꾸준히 대중적인 진보정당을 추구해왔습니다.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이라는 민주노동당 창당강령을 2011년 삭제한 것도 국민들과 사이에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였습니다. 진보당의 창당도 더 대중적인 정당으로 나아가려던 시도였습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진보당이 우리 국민이 자신의 제도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고, 그 목적을 어디엔가 숨겨놓을 방법도 없습니다.  
 
정부는 민주노동당 강령에 도입된 ‘진보적 민주주의’의 연원이 김일성에게 있다고 주장하나, 누가 그 말을 먼저 썼는지 거슬러 올라가면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과 의정원이었음이 확인된다는 사료와 현대사연구자의 증언이 이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었습니다. 헌법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마저 김일성의 사주를 받은 집단으로 매도하려는 것입니까.  
 
정부가 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나면 소수특권계급의 주권을 폐지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근거 없는 추측에 추측을 더한 것일 뿐입니다. 헌법이 어떻게 개정되든 37조 2항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의 침해 금지는 민주 헌법의 원칙으로서 지켜져야 할 사항이고, 당의 정책은 이미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헌법 37조 2항 위반이 없도록 마련되어 왔습니다.
 
보수언론과 종편은 진보당은 종북이라는 왜곡된 인상을 국민들에게 주입시켰습니다.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의 주요 수단도 역시 종북공세였습니다. 국정원과 종편 등의 막강한 여론전파력은 저희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정도였습니다. 왜곡을 바로잡으려고 한 마디 하면 오히려 말꼬리 잡기로 역효과가 생기기까지 하여 아예 언급을 피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급기야 정부가 이 종북공세로 만들어진 그릇된 인상을 기반으로 삼아 강제해산청구까지 감행했습니다.  
 
남과 북, 어느 편을 들 것이냐, 이것이 1945년 미국과 소련의 담합으로 한반도가 분단된 뒤 우리 민족 구성원 각자에게 강제된 선택지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찾아 남으로 내려오고 북으로 올라갔으며 총을 들고 골육상쟁을 치렀습니다. 내년이면 분단 70년입니다. 우리 민족이 언제까지 분단과 대결 속에 살아야 합니까. 강대국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어놓은 선 안에서 우리 젊은이들을 희생시켜가며 앞으로도 100년 200년을 보내야 합니까.  
 
선택지를 바꾸려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 없이는, 역사는 한 치도 진전하지 못합니다.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앞의 선택지는 더 이상 1945년판, 남과 북 누구 편이냐가 아니라, 21세기판, 남과 북이 평화와 전쟁 어디로 가게 할 것이냐가 되어야 합니다. 21세기 한반도를 책임지려는 정치세력이라면, 평화를 선택하고 남과 북 당국 모두를 평화로 이끌기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정부는 선택지를 바꾸려는 시도 자체를 북의 편을 드는 행위로 몰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현재에도 미래에도 1945년판 선택지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부의 입장에 찬성하는 국민들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전쟁을 치른 상대방과 마주 대화하는 것조차 새로운 상처가 되는 분들의 우려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전쟁의 고통 속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까. 전쟁과 대결의 상흔을 넘어 평화와 화해의 역사를 만들려는 시도는 분단이 만들어낸 우리 안의 고통을 치유하는 일이지, 이적행위도 남남갈등 조장행위도 아닙니다.
 
전쟁은 더 이상 안 됩니다. 남과 북 모두에게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대한민국 헌법은 통일에 전쟁의 방법을 동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통일은 우리 헌법의 지향점입니다. 헌법의 평화주의 원리에 따르면, 통일의 방법은 평화 밖에 없습니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충돌이 아니라 대화를 요구한 저의 어떤 말이 헌법에 위반된 것입니까.
 
북에 대해 저는 평화 공존의 원칙을 견지해왔습니다. 당을 대표하여, 한반도에 군사적 충돌을 일으키는 행위에 대해 모두 비판했고 남과 북 당국, 미국에 모두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민주노동당 대표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연 최고위원회에서 한 모두발언이 북의 공격행위를 비판한 것입니다. 2013년 4월 전쟁 위기 시에도 역시 진보당의 대표로서 일관되게 북의 미사일 발사 중단과 한미 군사훈련중단을 요구했고, 우리 당국이 대화를 제안했을 때 잘한 일이라고 환영했고 돕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진보당은 한반도 비핵화를 강령에서 명시하고 있습니다. 북핵도 폐기되어야 하고 남도 미국의 핵우산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 진보당의 공식 입장이며 여기에는 어떤 유보도 조건도 없습니다. 핵문제의 조속한 실질적 해결책 모색을 두고 북핵 옹호라고 매도하는 세력들이 오히려 북을 핵개발로 유도하고 해결을 늦춰온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한반도 전체에서 인류 보편의 인권을 실현하는 것 또한 이뤄져야 하고 진보정치가 해내야할 일입니다. 그러나 방법론에 있어, 인권문제를 논의할 최소한의 신뢰도 쌓지 못한 채 인권을 외치면서 전쟁을 부추기는 행위가 난무하는 것이 지금 남북관계의 현실입니다. 전쟁은 모두의 인권을 파괴하는 가장 반인권적인 행위입니다. 인권은 결국 평화 속에서만 꽃피어납니다. 진보당은 인권의 보편적 실현을 바라며 평화의 토대를 쌓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진보당은 분당을 거치며 큰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저를 비롯해 진보당을 이끌어왔던 사람들의 실패라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합니다. 준비보다 열망이 앞섰고 작은 욕심을 넘어 폭넓은 포용으로 나아가지 못한 탓입니다. 진보정치에 기대를 보냈던 국민들의 실망에 책임을 통감합니다. 누구보다 제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실패했다는 것이 어떻게 강제해산되어야 할 이유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모든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고 모든 이에게 평화가 깃드는 세상을 바랍니다. 진보당의 지향, 자주 민주 평등 평화통일은 우리 자신보다 더 귀한 존재인 우리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길입니다. 모든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자는 이 지향은 헌법정신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고, 헌법은 이 방향에서 더욱 발전되어야 합니다.  
 
개개인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역사의 진보를 위한 디딤돌 하나를 놓아주시기를 청합니다. 정부의 정당해산청구를 기각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분단의 고통과 적대의식마저도 더 이상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해주십시오.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당 관계자들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심판 공개변론에 참석, 자리에 앉아 개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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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