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혜진기자] 지난해 여름, 일본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교토를 방문할 때 꼭 들러야 하는 거리가 있는데요, 바로 기온 거리입니다. 전통 가옥이 늘어선, 마치 1900년대 초 일본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곳이죠.
당시 기온 거리를 걷다가 기모노를 입고 출근 중인 게이샤를 만나게 됐습니다. 하얗게 분칠을 하고, 입술은 붉게 칠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살짝 무서워보이는 몇 겹의 화장을 벗기면 그 안에는 소녀의 민낯이 있겠구나, 그렇게 상상했습니다.
호텔로 돌아와 NHK방송을 보는데, 마침 게이샤의 일상 생활을 찍은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있더군요. 그 게이샤가 거울을 보며 목까지 하얗게 칠한 화장을 지우는 순간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요. 까만 얼굴에 뭉툭한 코, 거친 피부를 가진 남자였던 겁니다. 당연히 소녀라고 생각했는데 분칠한 겉모습만 보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민낯이 드러난 셈입니다.
분식 회계도 남자 게이샤의 두꺼운 화장과 같습니다. 분식(粉飾)에는 '가루 분'(粉)이라는 한자가 들어가는데요. 그러니까 더럽거나 떳떳하지 않은 회계 장부를 감추기 위해 치덕치덕 분칠을 하는 것이죠.
대표이사나 임원진의 회삿돈 횡령을 가리려는 목적도 있구요. 적자를 흑자로 둔갑시키거나 허위 매출을 꾸미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수 년 연속 많은 이익을 내고 있다는 화려한 재무제표만 본 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겁니다.
기업들의 분식 회계 행각은 여전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8일 코스닥 상장사 금성테크가 전 대표의 회삿돈 횡령을 감추기 위한 분식회계로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를 받았구요. 5000만원 이상의 과태료가 부과됐습니다.
매번 분식회계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관련 기업의 주가도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치부를 가리려 허옇게 분칠하는 꼼수를 막기 위한 금융감독당국과 투자자들의 면밀한 감시와 제재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