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홍준표 경남지사가 9일 새벽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홍준표 경남지사가 17시간이 넘는 고강도 조사를 마치고 귀가했다.
홍 지사는 9일 오전 3시18분쯤 귀가하기 전 만난 취재진의 소명을 충분히 했느냐는 질문에 "소명은 최선을 다해서 했다"며 "부족한 부분은 차후에 다시 소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과의 만남 여부를 묻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서둘러 차에 올라 서울고검 청사를 빠져나갔다.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전날 오전 10시17분부터 시작한 조사에서 홍 지사의 진술을 최대한 이끌어내면서 그동안 확보한 진술과 증거들을 일일이 맞춰 나갔다. 먼저 홍 지사를 상대로 성 전 회장이 돈을 건넸다고 주장한 시기의 행적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인 윤 전 부사장이 2011년 6월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 당시 국회의원 회관으로 찾아가 1억원이 담긴 쇼핑백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시점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
또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압수한 2011년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비용 관련자료를 토대로 자금의 입출입 내역과 경위, 용처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이와 함께 측근들이 윤 전 부사장에게 당시 보좌관이었던 나경범 경남도청 서울본부장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할 것을 종용 또는 회유한 것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집중 확인했다.
홍 지사의 측근인 김해수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또 다른 측근인 엄모씨는 각각 전화 또는 직접 대면 방식으로 윤 전 부사장과 접촉해 회유했으며, 검찰은 당시 대화내용을 녹음한 파일을 윤 전 부사장으로부터 확보했다.
검찰은 홍 지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참고인을 불러 조사를 병행했다. 검찰은 홍 지사의 주장이 그동안 확보한 진술이나 증거와 다른 경우 참고인들의 진술을 확인한 뒤 사실관계를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지사도 제기된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검찰 조사에 공세적으로 임했다. 그는 성 전 회장 등의 주장과 언론을 통해 제기된 의혹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여과 없이 전했다. 특히 사전에 준비해 온 상당한 양의 자료들을 일일이 제시하면서 검찰의 조사에 대응했다. 검찰 관계자는 “홍 지사가 매우 상세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홍 지사는 점심시간에 이어 저녁시간에도 검찰에 요청해 별도로 마련된 장소에서 변호인과 보좌관 등 일행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조사에 대한 방어 전략을 치밀하게 세워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는 특별수사팀이 있는 서울고검 청사 1208호에서 실시됐으며 손영배 부장검사와 보좌 검사가 번갈아가며 홍 지사에게 질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홍 지사도 변호인으로 동석한 이혁 변호사의 조언을 받아 답변했다. 진술과정은 모두 영상으로 녹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손 부장검사는 사법연수원 28기로 금융수사에 능한 특수통이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연루된 '신정아 사건'을 수사했으며,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이 얽힌 '법조 비리' 사건을 맡아 유죄 선고를 이끌어냈다. 지난해 대검 형사2과장을 맡았다가 올해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장으로 임명됐다.
이날 홍 지사의 방패로 나선 이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20기로 문무일 팀장보다 2기수 후배지만 고려대 법대 85학번 동기다. 2004년 울산지검 특수부장을 맡았다가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사건 특별검사팀에 파견돼 활동했으며, 이후 대전지검 특수부장을 역임했다. 손 부장검사와 금융수사에 정통한 특수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검찰은 홍 지사의 이번 조사 결과를 그동안 확보한 객관적 자료와 비교, 대조 분석한 뒤 다음 주 중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