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러시아 펀드자금 환수 첫 성공…투자금 회수 기준 마련

'단독으로 소송 중재'…러시아변호사 1세대 이원형 변호사
"프로젝트 실패 아쉬워…관리 잘했으면 기록적 수익 냈을 것"

입력 : 2015-06-15 오전 6:00:00
이원형 러시아 변호사.사진/뉴스토마토
 
"몇 년간 고생 끝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는 기쁨 보다는 투자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게 개인적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 투자자들이 상당히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프로젝트였거든요."
 
이원형 러시아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최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시에 묻혀버릴 뻔 했던 우리나라 기관 투자금 120억원을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 부동산개발 투자 프로젝트와 관련해 투자금을 회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인 러시아 변호사가 혼자 소송과 중재까지 맡아 회수해온 것도 이번이 유일하다.
 
이번 사건은 일반적인 러시아투자 펀드 사건이었지만 상당히 까다로웠다. 러시아 비즈니스파트너는 개인 한명이었지만 우리나라에는 여러 당사자가 소송 등으로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변호사가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성공한 것은 환수형태에 대한 기준적 구조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2008년까지 러시아에 대한 외국의 투자가 집중되면서 가장 붐을 이뤘던 투자사업은 부동산개발 사업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고유가 지속에 따른 경상수지 확대와 외국인 투자 급증 등으로 대외지급능력과 재무건전성이 크게 개선된 상황이었다. 고성장이 계속되면서 향상된 소득수준이 내수확대로 연결되고 있었기 때문에 성장동력이 투자, 수출에서 내수로 전환되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러시아 주요 도시에 있는 부동산을 매입해 개발한 뒤 되팔거나 상가 건물로부터 거둬들인 임대료 등으로 수익을 얻는 투자가 인기를 끌었다.
 
투자는 통상 한국에 있는 시행사가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시 등 러시아 주요 도시 안에 있는 부지를 매입하고 비용 충당 요청을 받은 자산운용사가 사업성을 검토한 뒤 펀드를 만들어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투자의 안전성을 위해 현지 기업이나 재력가들이 공동개발에 나서는 등 비즈니스파트너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변호사가 투자금을 회수한 사건도 그랬다. 한국/러시아 합작법인 시행사인 리콥스키개발주식회사(국내 SPC)가 2007년 말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업무중심지역에 주거, 오피스, 상업시설 등이 들어 있는 복합건물 개발사업을 진행했다. 마이어자산운용(현 리치먼드자산운용)이 2008년 6월 '마이어사모러시아펀드1'를 만들어 투자자 유치에 나섰다. 추가부지 매입 및 인허가 완료후 본 PF또는 2차브릿지를 통해 상환하는 구조였다.
 
투자기간은 1년. 개발만 별 탈 없이 진행된다면 큰 수익을 올리는 것이 확실했다. 개발지역은 모스크바행 기차역 인근으로 노른자 중 노른자 땅이었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오피스 임대가격이 러시아에서 가장 높았다. 연간 상승율이 3%~15%에 달했다. 무엇보다도 현지 비즈니스파트너로 ECOPROM그룹 미하일 바브로프스키 회장이 참여했다. 그는 러시아 안에서도 손꼽히는 재력가였다. 그는 이미 개발사업 구역 일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더케이손해보험 등 4개 기관투자자가 총 240억원을 투자했다. 투자금은 수탁은행인 우리은행에 보관됐고 우리은행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매입한 부동산을 담보로 잡았다. 바브로프스키 회장 소유의 부동산에도 담보권을 설정받았다.
 
2008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시 부동산 개발사업지.
 
사업은 순탄했다. 개발구역에 들어와 있는 러시아 상가들로부터 받은 임대료는 투자자들에게 그때그때 배분됐다. 그러나 몇달 뒤인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 이후 위기를 맞았다. 금융위기로 2차 브릿지론을 모으는데 실패한 것이다.
 
"2008년 말부터는 개발사업 자체가 중단됐지요. 이미 들어간 자금에 대한 회수를 장담하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담보가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부동산을 매각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죠.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서 투자금 회수 가능성은 갈수록 불투명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1년 넘게 지속되자 결국 바브로프스키 회장이 2010년 3월 리콥스키개발을 상대로 러시아연방 상트페테르부르크 스몰렌스키구 법원에 계약해지 소송을 냈다. 그러나 리콥스키개발은 소송제기 시점을 전후해 사실상 이미 공중분해된 상태였다. 뒤늦게 소송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이어자산운용이 국내 대형로펌 2곳을 선임해 방어에 나섰고 로펌들은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로펌을 통해 소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후 1년 동안 진전이 없자 마이어자산운용 관계자가 이 변호사를 찾아왔다.
 
"러시아에서 직접 소송을 수행해 결론을 내달라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사건을 검토한 뒤 곧바로 러시아 현지로 갔습니다. 기일만 잡힌 상태로 사실상 중단된 재판을 속개하는 것이 가장 급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자마자 혼자 현지 법원 판사와 관계당국 실무자들을 만나 설득에 들어갔다. 재판은 곧 속개됐다. '한국인 러시아 변호사 1호'라는 타이틀과 주한 러시아연방 대사관에서 7년간 근무한 경력과 인맥이 빛을 발했다. 2011년 3월 1심 법원은 "계약을 해지하고 대금을 일부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한국 측의 일부승소였다.
 
바브로프스키 회장이 불복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연방법원에 항소했다. 이때도 이 변호사가 사건을 맡아 혼자 방어했다. 2심 법원은 1심을 깨고 "계약을 해지하고 대금 전부를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사실상 한국 측의 완승이었다. 바브로프스키 회장은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마이어자산운용은 이 변호사 대신 러시아로펌을 선임해 소송을 맡겼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1, 2심에서 내리 승소한 변호사를 교체한다는 것은 국내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러시아 법정에서 러시아 변호사들과 공방을 벌이며 소송을 수행할 수 있는 한국인 변호사는 이 변호사가 유일했다. 당시 변호사업계에서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러시아 대법원에서 소송이 진행되던 2012년 9월 국내에서는 투자자들이 마이어자산운용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한데다가 러시아 비즈니스파트너와 소송까지 붙자 그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이 변호사를 다시 찾았다. 소모적인 소송이 아닌 궁극적인 문제해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의 소송은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었고 4년 가까이 방치된 개발 사업을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은 여러 면에서 손해가 막심했다. 손해를 줄이고 투자금 중 다만 일부라도 회수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투자자들은 바브로프스키 회장과의 중재를 원했다. 이 변호사는 다시 러시아로 날아가 바브로프스키 회장을 직접 만나 설득에 나섰다.
 
"바브로프스키 회장으로서도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들어온 투자금을 만져보지도 못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부동산도 한국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어서 처분이 어려웠어요."
 
이 변호사는 한국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돌려주는 대신 우리은행이 담보로 잡고 있던 바브로프스키 회장의 부동산과 한국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매입한 부동산의 담보권을 모두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양측은 2014년 1월 이 제안에 잠정 합의했다. 마이어자산운용이 상고소송 진행을 고집했지만 그해 6월20일 최종 합의가 끝나면서 러시아와 한국에서의 소송이 모두 취하됐다.
 
단 바브로프스키 회장이 조건을 내걸었다. 담보권 매각의 모든 절차를 이 변호사가 맡는 것으로 하고 이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자고 주장했다. 러시아 법정에서 자신에게 두 번이나 패배를 안긴 이 변호사를 눈여겨 본 것이다.
 
투자자들 역시 동의했고 계약이 체결되고 3일 뒤 한국 투자자들의 투자금 120억원이 회수됐다. 최초 투자금액은 240억원이었으나 선이자를 포함해 그동안 들어간 운용비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투자금 전액을 찾아온 것이다.
 
이후 이 변호사는 합의내용에 따라 1년간 러시아와 한국을 오가며 모든 절차를 이행했다. 오는 20일이면 담보가 설정됐던 부동산 소유권이 모두 바브로프스키 회장 측으로 이전되면서 이 사건은 완전히 끝나게 된다. 투자사업이 중단된 지 6년, 소송이 시작된 지 5년만이다.
 
이 변호사는 비슷한 사례로 손해를 보고 있는 한국 투자자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 중에는 사실상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건설사가 러시아에 부동산을 매입한 상태에서 중단된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이 맹지를 산 경우인데, 매각이 어려워 처분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개발사가 부도난 경우에는 은행이 담보권을 행사해 처분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사실상 그대로 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에서 투입된 투자금만 손해를 본 셈이지요"
 
이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국제 금융위기 영향도 있었지만 위기 대처와 투자 관리가 아쉬웠다. 철저히 대응했다면, 기록적인 수익을 얻었을 수 도 있었다"며 여러번 안타까워했다. 그에 따르면 이런 영향 등으로 부동산 개발 투자보다는 이미 개발이 된 지역의 건물 등에 투자하거나 15%대의 높은 금리를 이용한 금융투자 쪽으로 투자 경향이 바뀌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대상"이라며 "리스크와 자신의 수익규모를 사전에 판단하되 가급적 환가 가능한 현지 부동산 등을 담보로 잡는 등 치밀하게 투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변호사는 구체적인 점검 사항으로 "첫째 좋은 파트너를 만날 것, 둘째 좋은 사업에 투자할 것, 셋째 현지에서 보내주는 법률 이론이나 자료 등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말고, 여러 방향으로 알아보고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투자를 시작할 때에는 자금 운용구조나 현지 담보 설정 및 시장상황 등을 면밀히 연구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일례로 러시아 담보권은 한국법률과는 달리 경매에서 담보물이 2회 유찰되는 경우 담보권이 자동으로 소멸하게 되어 있지만 초기 투자 때에는 이런 부정적인 부분보다는 긍정적인 부분만을 알려주기 때문에 실제 회수절차를 진행하게 되는 경우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따라서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연구와 정확한 투자금의 회수 방안이 마련된 이후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이어 "러시아를 겨냥한 투자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 개발될 것”이라며 “이번 사례가 러시아 투자 활성화와, 기업 등 러시아 투자를 고려 중인 여러 투자자들이 큰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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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