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공개변론, 이혼판결 '50년 유책주의' 이번에 바뀌나

유책주의 "시대상 반영, 껍데기 혼인 유지할 필요 없어"
파탄주의 "혼인도 계약, 계약 깬 배우자 보호하면 안돼"

입력 : 2015-06-26 오후 6:27:55
이혼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제기한 이혼소송 청구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두고 대법원에서 두 당사자 간 격론이 오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6일 오후 2시 대법정에서 공개변론을 열고 가족을 버리고 다른 여성과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A씨(69)가 별거 12년 만에 아내 B씨(67)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소송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공개변론까지 열어 양 당사자의 주장을 청취한 데에는 이번 사건이 이혼에 대한 우리 사법부의 입장을 명백히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혼외자 남편의 이혼 청구 소송의 공개변론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대법원은 그동안 이혼에 대해 '유책주의'를 원칙적인 입장으로 고수해왔다. 이혼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유책배우자)는 책임이 없는 상대 배우자에게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 이유는 민법이 '재판상 이혼원인' 규정에서 열거하고 있는 이혼청구 사유 때문이다. 민법 840조는 총 여섯가지 이혼사유 중 5가지를 부정행위, 악의적 유기 등 배우자의 유책사유를 이혼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마지막 이혼원인으로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를 뒀다.
 
그러나 최근까지 사실상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없어지고 명목상 혼인을 유지하는 것은 배우자 둘 모두에게 가혹하다는 비판이 학계는 물론 법원 내부에서 제기되어 왔다.
 
하급심에서도 유책배우자가 청구한 이혼소송일지라도 혼인관계를 더 유지시키는 것이 무익한 경우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는 '파탄주의'를 채택하는 예가 늘고 있다. 대법원도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파탄주의의 입장에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용한 예가 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사건 자체 보다는 이혼에 대한 원칙적 기준으로 '유책주의'를 고수하는 것이 타당한지 '파탄주의'를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한지가 쟁점이 됐다. '유책주의'를 고수하면 A씨의 청구는 기각된다. 반면 '파탄주의'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된다.
 
A씨를 대리하는 김수진 변호사는 이날 공개변론에서 사회적 변화에 따라 파탄주의를 채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더이상 '축출이혼'시대 아니야"
 
그는 "유책주의가 그동안 상대적 약자인 여성이 쫓겨나는 축출이혼을 억제하는 데 기여해왔음은 인정하지만 이제 더 이상 '축출이혼'이 문제되는 시대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2년에 조사한 결과 국민의 55.4%와 전문가의 78.7%가 배우자 보호조건 아래 파탄주의의 제한적 수용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최근 헌법재판소가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지 타율적으로 강제될 수 없는 것’이라면서 간통죄를 위헌으로 결정을 한 것도 혼인관계 등에 대한 우리 사회 일반의 의식 변화를 반영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법원이 유책주의를 엄격하게 고수할 경우 당사자들로 하여금 상대방이 유책배우자라는 점을 주장, 입증하도록 함으로써 오히려 서로간의 반목과 증오만 키울 뿐, 혼인관계 구제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는 민법상 이혼 사유는 파탄주의의 원칙적 규정으로 볼 수 있고, 우리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협의이혼 제도 역시 파탄주의에 입각한 태도이기 때문에 파탄주의를 채택해도 민법상 장애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혼인파탄의 객관적 기준으로 외국 입법례를 고려해 3~5년 동안 별거했을 경우를 제시하면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경우 상대방이나 자녀가 경제적으로 가혹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위자료, 재산분할 등에서 부양적 요소를 현실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에 맞서는 B씨측 대리인 양소영 변호사는 "타인(배우자 등)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유책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이 보호될 수는 없다"며 파탄주의 주장을 일축했다.
 
양변호사는 혼인도 계약행위임을 강조하면서 "부정행위로 혼인 계약을 깬 자가 혼인이 파탄되었으니 해방시켜달라며 권리를 남용하는 것을 법이나 판례로 보호할 수는 없다"며 "아무리 시대정신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더라도 하여도 이마저 달라질 수 없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국가는 헌법상 혼인과 가족생활제도를 보장해야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법원의 유책주의 원칙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대 희생, 유책배우자 보호하면 안돼"
 
간통죄 위헌 결정에 대해서도 "간통죄 위헌 결정이 마치 이혼 사건에 있어서도 유책배우자에 대한 면책 신호탄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으나 간통죄는 매우 사적이고 은밀한 부분이어서 형사처벌 밖으로 벗어난 것으로, 유책배우자 이혼청구 문제는 사회 기초를 이루는 가족에 관한 것으로 달리 판단되어야 한다"고 김 변호사의 주장을 맞받았다.
 
양 변호사는 "파탄주의 주장 측은 유책주의가 재판과정에서 진흙탕 싸움이 되는 것을 지적하지만 파탄주의에서도 위자료 금액은 파탄 정도에 따라 정해질 것이기 때문에 다를 바가 없고 민법상 혼인 파탄 기준이 명백히 없기 때문에 파탄 여부를 두고 더욱 치열하게 다툴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양 변호사는 이어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 금액 또한 현실적이지 못하고 재산분할도 실무상 장래 부양료를 지급하는 재산분할은 전혀 채택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책배우자들 대부분이 별거하고 있어 실제 재산분할대상 자체가 없다"며 "파탄주의를 도입하기에는 아직 현실은 냉정하고 보호의 길은 너무 멀다"고 주장했다.
 
양 측이 내세운 참고인들 간 논리 공방도 불꽃이 튀었다. 파탄주의를 주장하는 A씨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화숙 연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책주의가 보호했던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이 높아진 만큼 파탄주의를 도입할 만큼 우리사회는 성숙했다"며 "사실상 파탄된 부부의 이혼을 법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이혼 부부의 새출발을 가능하게 하고, 유책주의의 적대적인 이혼절차대신에 '성숙한 이혼'과 ‘깨끗한 청산’을 유도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유책주의를 주장하는 B씨 측 참고인으로 나온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용할 경우에는 ‘혼인생활에 잘못이 있어도 언제든지 이혼을 원하면 할 수 있다’ 라든가 ‘혼인생활을 성실히 했으나 언젠가는 내 의사에 반해서 이혼을 당할 수도 있다’라는 의식을 확산시킬 것은 분명하다"며 "우리 사회가 파탄주의를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이후에 본격적으로 도입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 양측 대리인과 참고인 진술 뒤에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각 대법관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양 대법원장은 양육비 등 이혼 후 자녀들에 대한 행복과 복지 문제를, 주심인 김용덕 대법관은 파탄의 객관적인 기준을 집중 질의했다. 민일영 대법관은 위자료와 손해배상, 재산분할 문제를 파고들었으며, 박보영 대법관은 각 주장별로 사회적 파장에 대한 의견을 질의했다.
 
◇대법원장 "굉장히 고뇌 따르는 문제"
 
양 대법원장은 이날 공개변론을 끝마치면서 "입법적인 해결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법해석을 통해 어떤 결정을 할 지 굉장히 고뇌가 따르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논의된 모든 사정을 참작해 오랜 연구와 토의, 숙고를 통해 가장 적절한 결정을 내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날 공개변론에서 나온 의견들을 면밀하게 분석한 뒤, 올해 안에 이번 사건에 대한 선고와 함께 판례 변경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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