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입찰담합 사건에서 실무진으로부터 담합사실을 사후에 보고받았다는 사실 만으로 임원이 담합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보고 과징금을 가중한 공정거래위원회 처분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황병하)는 GS건설이 "시정명령 및 과징금부과 조치가 잘못됐다"며 공정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시정조치 및 과징금납부명령 중 과징금납부 명령을 취소한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의 실무 부장이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각 실무부장과 함께 입찰 담합 합의를 한 뒤 원고 담당 임원인 상무에게 합의사실을 구두로 보고했고 상무가 알았다고 답변하는 등 담합행위를 제지하기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원고의 고위 임원이 담합행위에 직접 관여했다고 보고 원고에 대한 과징금 1차 조정 산정기준의 10%를 가중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 인정사실에 의하더라도 담합행위를 원고의 상무가 삼성물산, 현대건설 임원 등과 직접 만나 합의를 했거나 이에 준하는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며 "담합행위와 관련해 원고의 실무 부장과 본부장이 순차 공모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더라도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원고에게 과징금 산정기준의 10%를 가중하고 그에 근거해 과징금 납부명령을 한 것은 과징금 부과 기초가 되는 사실을 오인했거나 비례·평등 원칙을 위반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09년 7월 4대강 살리기 사업 일부공사인 낙동강하구둑 배수문 증설공사를 발주했고 같은해 10월 GS건설과 삼성물산, 현대건설 실무부장들이 전화를 통해 수자원공사의 발주에 대해 담합했다.
입찰 출혈경쟁을 막기 위해 설계부문만 경쟁하되 저가투찰을 하지 않고 투찰율을 공사예정금액의 95%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95%에 가장 가까운 금액으로 투찰한다는 것이 내용이었다. GS건설 홍모 부장은 이 사실을 담당임원인 김모 상무에게 구두로 보고했고 김 상무는 '알았다'고만 답했다.
결국 입찰에서 종합점수가 가장 높은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낙찰을 받아 같은해 11월 한국수자원공사와 총 2100억여원에 달하는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했다. 공정위는 이들의 입찰 담합행위가 부당공동행위에 해당하고, GS건설의 경우 고위임원인 김 상무가 담합행위를 보고 받은 뒤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는 방법으로 담합행위에 참여했다며 과징금 산정시 10% 가중했다.
이에 GS건설은 "입찰 경쟁의 핵심은 설계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설계분야에 제한 없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으므로 담합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고위 임원에 대한 사후 보고를 적극적인 담합참여로 본 것은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다.
이번 사건에서 GS건설을 대리한 이창훈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이번 판결은 입찰담합 사건에서 고위임원이 단순히 사후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과징금을 가중해 처분해 온 공정위의 관례에 제동을 건 판결이어서 주목된다"고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서울법원종합청사.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