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화 엠버저 대표 "목숨걸고 창업하지 마세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창업 못해"

입력 : 2015-09-09 오후 2:21:31
"창업을 꿈꾸는 젊은 친구들에게 한 가지만 말하고 싶어요. '내가 지금 창업하지 않으면 다른 기회는 영원히 없을 거야, 이게 아니면 죽을 거야'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인생엔 항상 플랜A, 플랜B가 있더라고요. 너무나 많은 청년들이 '이게 아니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힘들어 합니다. 결정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으세요."
 
이근화 엠버저 대표(35)는 20대 예비 창업자들의 멘토로 유명하다. 사물인터넷(IoT) 전문 기업 엠버저의 수장이 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만큼,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다. 대학을 졸업한 뒤 첫 사업을 시작했고, 사업을 접은 후엔 벤처기업 기획팀장으로도 3년간 일했다.
 
지금은 대형 식품회사 발효실에 스마트 센서를 납품하고, 사물인터넷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3년차 벤처기업의 대표이사다. 9명의 직원들과 일하는 그의 사무실은 사물인터넷을 이용한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이 대표의 스마트폰 앱에서 직원 한 명의 이름을 터치하면, 대표실 바깥에 있는 해당 직원의 책상에 스마트 조명이 켜진다.엠버저 만의 독특한 호출 방식이다.
 
대표의 잔소리가 길어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정해진 회의 시간을 초과하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는 시스템도 있다. 일하다 지루하면 구석에 있는 보드게임을 해도 되고, 디자이너들은 전시회를 보며 머리를 식혀도 된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서울 논현동 엠버저 사무실에서 이 대표의 흥미진진한 사업 이야기와 창업 후일담을 들어봤다.
 
이근화 엠버저 대표./사진 공감인베스터
 
-엠버저라는 사명이 특이한데, 무슨 사업을 하는 회사인가?
우리의 주력 사업은 사물인터넷 서비스인데, 그 중에서도 비콘(근거리 무선통신장치) 기술을 많이 활용한다. 주로 공장이나 농장, 사무실 창고에서 필요한 환경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납품하고 있다. 일단 고객을 만나 어떤 센서가 필요한지를 파악해 공장에 온도·습도 센서를 부착하고, 온라인 계정을 발급한다. 그러면 마치 페이스북에 접속하듯 들어가 언제어디서나 공장 상황을 모니터링 할 수 있다. 만약 암모니아 가스 농도가 기준치를 넘어서는 등 이상 상황이 발생하면 관리자에게 알림 메시지가 뜬다. 이렇게 생산 품질과 화재, 가스 유출 같은 안전사고를 원격으로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운용하고 있다. 회사 이름 엠버저에는 초창기 기획했던 모바일(Mobile) 사업의 첫 철자 ‘M'이 들어갔다. ’버저‘는 벌이 위잉하며 진동하는 소리에서 따왔는데 우리 사업의 영향력이 세상에 자극제가 되고, 널리 전파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반영됐다.
 
-3년차 신생회사다. 주변에 비슷한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도 허다하고, 큰 규모의 상장사도 많은데, 경쟁력이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사물인터넷 사업을 하는 회사도 많고, 원하는 서비스라면 다 만들어주겠다는 회사도 많다. 하지만 정작 패키지 형태의 완제품을 만들어서 매출을 내는 회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큰 회사들은 스마트 팩토리같은, 대규모 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대기업들은 그만큼 큰 비용을 들여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지만, 작은 회사들은 다르다. 지방에 있는 공장이나 농장은 생각보다 영세해서 수 천 만원의 비용을 쓰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바라보는 시장이 바로 이 쪽이다. 비닐하우스든, 작은 창고든 우리에게 의뢰만 하면 하루 안에 센서를 설치하고, 다음날부터 바로 페이스북에 들어가는 것처럼 쉽게 모니터링할 수 있다. 대기업들은 대규모 시스템 구축해서 언론 홍보만 대대적으로 하고 끝이지만, 우리는 저렴한 월 이용료 형태로 받고 있고, 사후 관리에 중점을 둔다. 우리가 집중하는 분야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던 회사 중 가장 앞서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사물인터넷 기업이지만, 센서 제품도 개발하고 있어서 분야를 한정 짓기 어려운 것 같다. 정확히 어떤 부문에 강점이 있다고 봐야 하나?
예전에는 분야를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경계가 흐려진 것 같다. 소프트웨어냐 하드웨어냐, 또는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를 구분 짓는 게 의미가 없다. 사물인터넷도 그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고, 어느 한 쪽만 해서는 하기 힘든 세상이 됐다. 사실 우리는 소프트웨어로 시작했던 회사이고, 잘할 수 있는 분야도 이쪽이다. 둘 다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의 핵심 역량은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쪽에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이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좀 더 의미 있는 데이터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얘기다.
 
-젊은 나이에 회사 대표가 됐는데, 어떻게 창업을 시작하게 됐나?
81년생이고, 00학번인데 창업에 성공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 네 명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는데 아이템은 CD나 테이프를 MP3파일로 변환하는 서비스였다. 그 때는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할 줄 알았는데, 사업은 아이디어보다 사업 외적인 부분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웬만한 기업에 전문경영인이 따로 있는 이유다.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일하는 과정에서 갈팡질팡하다보면 애써 구한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기도 했다. 그런 것에 한계를 느껴 벤처기업에 취직해 3년 정도 일하기도 했는데, 결국은 ‘진짜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져 다시 창업에 뛰어들었다. 사업 외적인 부분의 어려움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욕망이 컸다. 결혼한 지 얼마 안돼서 회사를 관두고 2번째 창업을 했는데, 항상 그렇지만 가족을 설득하는 일이 제일 힘들다. 지금은 관성이 붙어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일단 올해 목표는 제품 라인업을 더 늘리는 것이고, 길게는 우리 직원들이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이런 서비스를 만들고 있고, 나는 이런 일을 해’라고 명확히 말 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
 
-마지막으로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농담 삼아 ‘절대 하지 말라’고 말하곤 하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게 아니면 난 죽는다’는 생각으로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한 창업가들이 목숨 걸고 사업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 그렇지 않다. 인생에는 항상 옵션 A, 플랜B가 있다. 창업하다 잘 안됐더라도 여전히 젊은 나이다. 너무나 많은 20대들이 ‘내가 이것 하나를 잘못 결정하면 끝일거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못한다. 물론 몇 번 실패할 수 있다. 창업에 2~3년 매진하다가 취업하게 되더라도 면접에서 내가 그동안 했던 것을 어필하면 된다. 그리고 창업 DNA가 있는 사람이라면, 직장에 들어가서도 기회가 온다. 너무 큰 것부터 시작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작게 쪼개서 시도해야 한다. 그래야 잘 안됐어도 내려오기가 쉽다. 첫걸음을 크게 가려는 스타트업은 대부분 망한다. 최대한 작은 서비스부터 시작해 테스트해 볼 필요가 있다. 꿈은 크게 가지되, 액션은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공감인베스터
 
이혜진 기자 yihj072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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