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민주노총 창립 20주년에 부쳐

입력 : 2015-11-17 오후 1:43:21
일주일 전 11월 11일은 민주노총이 창립된 지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신문과 방송의 외면 속에 민주노총의 20주년 기념식은 소박하게 치러졌다. 생일잔치 분위기는 고사하고 비장함이 느껴질 정도로 기념행사는 차분하고 엄숙했다. 경찰 수배로 한상균 위원장이 참석하지 못한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민주노총은 ‘20세기 노동자의 자랑, 21세기 민중의 희망’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하였다. 성년이 된 만큼 노동자만의 권익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의 삶도 책임지는 조직이 되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민주노총은 1987년 이후 성장한 민주노조의 결집체이며, 한국 노동운동의 발전을 이끈 견인차였다. 민주노총은 1987년에 탄생한 신생노동조합들을 그 뿌리로 하고 있다.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설립된 3300여개의 신규 노동조합들은 한국노총과는 사뭇 다른 노동조합을 지향하였다. 이들 노동조합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주성·민주성·연대성으로 설정하였다.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자주적인 노동조합, 소수 간부중심의 운영을 탈피한 민주적인 조직,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연대성을 운동 방향으로 설정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1995년 창립 당시 39만여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하였으나, 현재는 70만명의 조직으로 성장했다.
 
민주노총은 창립 1년 만에 1996∼1997년 총파업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노동법 개정안을 무효화하는 성과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주 40시간제 법제화 투쟁을 통해 주 5일 시대를 열었다. 또한 무상의료·무상교육 등 사회개혁 의제를 내걸어 사회공공성 투쟁을 전면화하였고, 노동법 개정을 통해 교사와 공무원의 단결권을 실현시켰다. 이뿐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운동을 통한 저임금노동자 보호, 비정규직 차별철폐운동에 누구보다도 앞장서 싸워왔다.
 
하지만 20주년을 맞이한 민주노총은 과거의 성과를 자랑하기에는 너무나 큰 도전 앞에 직면해 있다. 정부·여당은 민주노총의 기반인 정규직·대기업 노조운동을 기득권층으로 매도하며 노동개악 법안을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결의하였지만 투쟁의 기세는 높지 않고 파급력도 제한적이다.
 
민주노총이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노동조합의 영향력 축소이다. 1989년 19.8%였던 노조조직률은 점점 낮아져 10.3%에 머물고 있으며,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노조조직률은 2%에 불과하다. 노조의 혜택을 보는 노동자의 비중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그 대상도 주로 대기업과 공공부문 등 상층 노동자들에 집중되어 있다. 외환위기 이후 대·중소기업 사이의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가 사라진 것처럼, 대기업노조의 임금인상 효과가 중소사업장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현저히 약화되었다. 기업규모별, 고용형태별 임금·복지 격차는 노동연대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며, 민주노조운동의 사회적 지지를 약화시킨 요인이다.
 
2015년 7월 발표된 IMF의 ‘불평등과 노동시장 기관(Inequality and Labor Market Institutions)’ 보고서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하락할수록 소득 불평등이 커짐을 밝히고 있다.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떨어질수록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해를 경제 정책과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에 반영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열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노동대중의 결집이 필요하며, 그 대안은 노동조합 조직화다. 노조조직률 하락은 사회적인 리스크가 한계치에 가깝거나 이미 넘어섰음을 가리키는 ‘빨간 신호등’이다. 노동의 추락은 교섭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노조원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들에게 미친다.
 
노동의 세력화 그 중심에 민주노총이 있어야 한다. 민주노총은 더 낮은 곳을 지향해야 한다. 70만 민주노총 조합원의 조직이 아닌 1800만 노동자의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 노동연대와 사회개혁은 민주노총이 주창했던 정체성의 핵심이 아니던가. 창립20년을 맞이한 민주노총의 변화와 재도약을 기원해본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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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