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토마토 김지영기자]고용노동부가 지난 28일 발표한 단체협약 실태조사 결과를 놓고 논란이 거세다. 고용부는 단체협약 4건 중 1건에 ‘고용세습’ 조항이 포함됐다고 밝혔으나, 노동계는 정부가 실제 적용되지 않는 사문화한 규정을 빌미로 고용난의 책임을 양대 노총에 전가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고용부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100명 이상 유노조 사업장의 단체협약 2769개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우선·특별채용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은 총 694개(25.1%)였다. 이 가운데 ‘정년퇴직자 자녀 우선·특별채용’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은 442개,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특별채용’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은 19개였다(중복 집계). 상급단체별로는 민주노총 사업장의 37.1%가 단체협약에 ‘우선·특별채용’ 조항을 두고 있었다.
고용부는 “고용세습 조항은 고용정책기본법상 취업기회 균등보장 규정에 위반되고, 다른 구직자의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해 판례도 위법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정부가 이미 실효성이 없거나 수정 중인 단체협약을 억지로 동원해 적법한 단체협약을 불법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고용부의 단체협약 실태조사에서 단체협약에 ‘우선·특별채용’ 조항을 두고 있는 사업장은 총 221곳이었다. 민주노총은 이 가운데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89곳)을 추려 자체 조사를 실시한 결과, 최근 3년간 실제 고용세습이 이뤄진 사업장은 한 곳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 한 곳도 중소규모 사업장으로, 우선·특별채용 또한 대규모 희망퇴직 과정에서 이뤄졌다”며 “사실상 고용세습이 적용되는 사업장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고용부 역시 고용세습이 이뤄진 실제 사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기권 장관은 28일 브리핑에서 “단체협약은 우리에게 신고돼 분석할 수 있지만 개별 기업의 채용이나 이런 부분들까지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는 없다”며 “사례를 통계화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고용부는 협약상 조항만을 들어 “일부 정규직 노조의 지나친 이기주의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단체협약 개정 상황에 대한 설명이 없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지난해 우리가 각 지부에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만한 단체협약을 노사 자율로 개정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현재 개정이 진행 중인 곳들도 많다”며 “문제가 있는 내용들을 스스로 바로잡고 있는데, 현 시점에서 작년의 상황을 놓고 ‘지금 이렇다’고 말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노동계는 정부가 실제로 이뤄지는 ‘권력형 낙하산 채용’에 눈 감으면서 명목상 조항에 불과한 조합원 자녀 우선·특별채용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른 노동계 관계자는 “최근 중소기업진흥공단의 권력형 채용비리가 논란이 됐다. 정부는 그런 문제에는 손도 안 대면서 고용승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노조만 문제 삼고 있다”며 “최소한 우리가 갑질을 한다고 말하려면 그런 사업장이 몇 곳인지, 채용시험에서 일반 지원자와 조합원 자녀가 각각 어떤 점수를 받았는지부터 내놓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종=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2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고용부 기자실에서 위법·불합리한 단체협약에 대한 개선 지도계획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