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롯데그룹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이 신격호 총괄회장(94)의 조세포탈 혐의와 관련해 법률자문을 해 준 대형로펌을 본격 조사하면서 로펌 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4부(부장 조재빈)는 신 총괄회장의 탈세 정황을 포착하고 그 과정에서 법률자문을 해 준 A로펌으로부터 지난 1일 관련 자료를 임의제출 받았다고 3일 밝혔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사실혼 관계에 있는 탤런트 서미경(57)씨와 그 자녀들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과정에서 탈세가 있었다는 단서를 잡고 수사를 확대 중이다. A로펌은 국내 5위권 안에 드는 유명 로펌으로 오랫동안 롯데그룹에 전반에 대한 법률자문을 맡아왔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신 총괄회장의 탈세 혐의를 조사 중"이라면서 "아직 구체적인 상황을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A로펌으로부터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면서 신 총괄회장의 탈세 규모와 경위 등을 집중 파악 중이다. A로펌이 신 총괄회장의 탈세를 도왔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검찰이 신 총괄회장에 대해 탈세 혐의를 두고 있는 이상 A로펌이 법률자문 과정에서 탈세를 도왔거나 편법적인 방법을 소개한 사실이 드러나면 A로펌 이나 자문 담당 변호사 역시 피의자 신분을 면할 수 없게 된다.
한편, 변호사업계에서는 A로펌이 신 총괄 회장의 탈세에 관여했는지 여부가 본령이 아니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국가를 상대로 벌인 270억원대 소송사기에도 A로펌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2004년 11월 롯데케미칼이 고합의 자회사인 KP케미칼사를 인수하면서 고정자산 규모를 1512억으로 속여 회계 처리한 뒤 국세청을 상대로 법인세 경정청구 등 소송을 제기해 총 270억원을 환급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검찰 관계자는 "해당 로펌이 롯데케미칼의 회계조작 사실을 알고도 소송을 대리했는지 확인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검찰은 김씨 등의 진술과 증거물들을 토대로 A로펌 관계자들을 이미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검찰이 A로펌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가 신 총괄회장의 증여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소송사기 대리 의혹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위한 ‘바탕 다지기’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A로펌이 신 총괄회장의 탈세를 도왔거나 방조한 것이 밝혀지면 그것 역시 위법이지만, 국가를 상대로 한 대기업의 소송사기를 대형로펌이 대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A로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변호사업계 전반에 대한 신뢰와 도덕성에 치명타를 주게 된다.
시기가 법률시장 완전 개방의 원년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외국로펌과의 경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이번 수사가 또 다른 대형로펌으로 번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롯데케미칼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사기를 벌일 당시 A로펌 외에 B로펌도 함께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B로펌 역시 국내 5위권 안에 드는 대형 로펌이다. 검찰은 롯데케미칼의 소송사기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면 B로펌 관계자들 역시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해당 로펌들에 대한 수사의 분수령은 허수영(65) 롯데케미칼 사장의 소환조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허 사장은 롯데케미칼의 국가에 대한 소송사기를 지시 또는 묵인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다음주 중 허 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할 계획이다
지난 6월12일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롯데그룹 서울 중구 소공동 본사 앞 신호등에 적신호가 들어와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