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토마토 김지영기자]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등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가 지난 10년간 118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직무와 정신질환,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 공식 산업재해 통계로, 실제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자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1일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 중 산업재해로 승인된 건수는 2006년 5건에서 2011년 14건, 지난해에는 22건으로 늘었다. 2005년 이후 누적건수는 118건이다.
2011년부터는 신청건수가 매년 40건 이상으로 급증했으나, 상당수는 직무 스트레스와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아 산재로 승인되지 않았다. 자살이 산재로 인정되려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의 업무 관련성 및 해당 정신질환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임이 입증돼야 한다. 또 특정 기간 내에 정신질환, 자살의 동기가 될 만한 사유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자살은 당사자가 없이 재해조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업무 관련성이 입증되기 어렵다. 특히 직무의 구체적인 내용, 사내 근무환경, 직무 스트레스 노출 정도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협조가 필요한데, 자살 산재가 발생한 대부분 기업이 은폐에 치중한다고 노동계는 지적하고 있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승인되지 않은 산재신청 건수 중에도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자가 존재하겠지만 그보다는 산재를 신청조차 못 하는 사례가 훨씬 많을 것”이라며 “자살 산재가 발생해도 기업이 자살을 개인적 문제로 취급하거나 유가족들이 대응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공식 통계에서 자살자 수가 적은 것은 우울증이나 자살이 산재로 인정되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실재 자살 산재는 이보다 몇 배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무상 정신질환은 크게 우울증, 적응장애, 급성스트레스장애, 불안장애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이 중 우울증의 비율이 가장 높다. 정신질환의 원인으로는 과도한 업무강도, 상사의 폭언·폭력, 직장 내 따돌림 등 대인관계 부적응, 과도한 감정노동 등이 지적된다. 지난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홍영 검사도 부장검사의 폭언·폭행으로 고통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직무상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노동자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10년간 승인된 업무상 정신질환 요양자 수(사망자 제외)는 총 247명이다. 지난해에는 106명이 급성스트레스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산재를 신청해 41명이 요양을 승인받았다.
하지만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을 사전 예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폭언·폭행 등 물리·언어적 폭력은 근로기준법, 형법을 통해 제재가 가능하지만, 직장 내 따돌림이나 고객의 갑질 등을 제재·처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각 직장에 심리상담·치료사를 두도록 해 업무 스트레스가 정신질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거나, 캠페인 등을 통해 사회적 인식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그나마 실현 가능한 대안이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현재 정부와 공단에서 감정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치유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하고,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며 “직무 스트레스에는 과도한 야근 등 근무환경, 기업 조직문화 등이 많이 엮여 있어서 직접 예방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우회·간접적인 방식으로나마 직무 스트레스 예방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마포대교에 설치된 'SOS 생명의 전화'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스1
세종=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