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홍기자] 금융당국이 상장·공모제도 개편을 추진한다. 미국 테슬라의 나스닥 상장 사례를 참고해 현재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기업도 성장가능성이 있다면 상장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5일 ‘9월 금융개혁 기자간담회’에서 상장기업의 ‘성장가능성’과 인수증권사의 ‘자율과 책임’을 골자로 상장·공모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개편안은 현재 검토중에 있으며, 이달 안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상장하는 기업의 성장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상장요건(테슬라 요건)을 신설할 계획이다. 현재는 매출과 이익이 있는 기업에 대해서만 상장이 허용되는 등 엄격한 재무적 기준이 적용된다. 상장기업의 도산으로 인한 투자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5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상장·공모제도 개편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금융위원회
이에 대해 임종룡 위원장은 “기업이 투자자금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는 매출이나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사업화 단계”라면서 “현재 상장제도는 공모자금의 효율적인 활용기회를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 위원장은 상장제도 완화와 관련해 테슬라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테슬라는 적자상태에서 나스닥에 상장해 공모자금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전기자동차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면서 “만약 테슬라가 한국 기업이었다면 코스닥 상장을 통해 성장기반을 마련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신규 상장기업의 평균 총자산이익률(ROA)은 마이너스 10.6%에 달하는 등 적자기업의 상장이 일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임 위원장은 “자본시장을 통해 미래성장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나 생산기반 확충 등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적자가 발생하더라도 상장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번 상장제도 개편을 통해 기업의 성장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받고 있고, 어느 정도 사업기반을 갖춘 기업은 적자상태에 있더라도 상장을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날 간담회에서는 공모제도 개편방향도 제시했다. 상장제도 개편과 연계해 성장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대한 공모절차를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성장가능성이 높은 기업의 공모가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상장주관사가 수요예측 등의 절차 없이도 공모가를 산정하거나, 다양한 기법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추진한다. 다만 상장주관사가 자율성을 누리는 만큼 투자자 보호와 시장신뢰 유지를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시장조성 의무를 부담하도록 책임이 강화된다.
자료/금융위원회
다만, 임 위원장은 이번 상장·공모제도 개편이 단순히 상장요건을 ‘완화’하는 것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재무적 성과에 편중된 상장요건을 시장의 평가나 기업의 성장가능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할 수 있도록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편할 것”이라며 “적자기업 상장 시 우려되는 투자자보호에 대한 문제는 공모가 산정의 투명성과 객관성 확보, 상장주권사의 책임성 강화, 투자설명서를 통한 관련 정보의 충실한 제공 등을 통해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방안에 대해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기술과 성장 가능성이 있지만 R&D 또는 설비 투자로 인해 적자가 발생한 벤처기업의 경우 자금조달이 보다 원활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면서 “공모가 산정에는 주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주가수익비율(PER) 등의 지표가 활용되는데 상장주관사의 자율성이 확대되면 적자기업의 경우 공모가 산정에서 유리해진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과거에 비해 기업들의 자금조달 기회가 많아진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실질적으로 투자자의 책임이 강조되면서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는 후퇴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재홍 기자 maroniev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