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기자]수년 전만 해도 ‘의료기기 사용’의 ‘의’자도 못 하던 한의학계가 이제 의료기기 사용 문제를 놓고 보건복지부, 대한의사협회와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또 한약을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알약 등으로 만드는 한약제제 제형 현대화의 토대도 마련했다. 여기에 한의학에 대해서도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의료수가 인상도 어느덧 공론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모두 김필건 회장이 대한한의사협회장에 취임하면서 벌어진 변화들이다. 올해 4월 연임에 성공한 김 회장은 한의사로 시작해 강원도 한의사회 회장,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 이사장, 국제동양의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반평생을 한의학 부흥을 위해 힘써왔다. 남은 임기 동안 김 회장은 지금껏 다져온 기반에서 싹이 오르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최근에야 공론화가 시작된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이다.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은 지난 24일 뉴스토마토와 인터뷰에서 한의원 의료기기 사용은 갈등이 아닌 상식의 문제라고 강조했다(자료사진). 사진/대한한의사협회 제공
이하 일문일답.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싸고 한의협과 의협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형외가 의사인데, 만약 정형외과 의사들한테 엑스레이 등 진단장비 없이 치료하라고 하면 무슨 일이 발생하겠냐. 우리도 도구를 활용해 정확한 진단을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법 1조가 ‘이 법은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으로 시작된다. 한의사는 의료인으로서 ‘국민의 건강한 생활 확보에 이바지할 사명’을 가진다. 복지부는 직능 간 갈등 아젠다로 관리하고 있는데, 이건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다. 특히 2011년부터는 한의사들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표(KCD)를 사용하게 됐다. 양의학과 진단명을 맞추라는 것인데, 진단을 할 수 있는 장비를 못 쓰게 하면 어떻게 진단명을 맞추라는 건가.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해서는 의협 등에서 안전성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는데.
충분히 동의한다.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무시하고 사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보수교육 등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받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양의사들은 언제부터 초음파를 썼느냐. 초음파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게 80년대 중후반인데, 의협 논리대로라면 그 전에 의사 면허를 취득한 사람은 초음파를 쓰면 안 된다. 우리와 다를 게 없지 않느냐. 그래서 그게 이유라면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장비를 쓰고 싶다면 일정한 교육과 인증 절치를 거쳐라’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복지부가 해야 할 일도 이것이다. 지금은 그저 의협의 일방적 주장을 대변하고 있다.
-한·양방 통합도 뜨거운 화두다.
지난해 의료기기 사용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의협에서 요구한 한·양방 통합 논의를 수용했지만, 그마저도 의협에서 거부해 무산됐다. 이제는 양·한방 통합을 논의할 상황이 아니다. 한방과 양방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의료기기 문제부터 풀려야 한다. 동일한 언어로 동일한 진단명을 쓰려면 동일한 진단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각 의학의 특성에 맞게 치료를 하고, 다시 예후 관찰을 동일하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어떤 질환에는 어떤 치료법이 좋더라 하는 결과가 나온다. 또 한·양방이 서로 협력해 치료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런 게 의료법 1조에 부합하는 것 아니겠냐.
-최근 정부는 해외의료진출 및 첨단의료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한의학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철저히 소외시키고 싶다. 중국은 중의학 시장을 세계시장에 진출시키기 위해 국가적으로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50년까지 대체의학시장이 5조달러, 6000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우리 복지부도 정책적으로 한의학을 키우고, 대체의학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현재 300조원 대체의학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4%에 불과하다. 오히려 우리는 의협에서 나서서 한의학의 의료기기 사용을 막고, 한의학에 대한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검사기관에 한약의 효과 검사를 의뢰하는 것도 방해한다. 또 의협 대의원총회에서 한의과대학에 출강을 가는 의대 교수들을 윤리위에 제소하는 안을 의결했다.
-유언비어라는 게 어떤 것들인지
일부 산부인과 가면 한약을 먹지 말라고 한다. 기형아 낳는다, 유산한다는 이유다. 암 진단 뒤에 한약을 먹어도 암이 퍼지니 먹지 말라고 한다. 또 간에 한약이 안 좋다는 이야기도 많다. 물론 특정 장기에 부담을 주는 한약도 있고, 반대로 도움을 주는 한약도 있다. 그런데 최소한 한약이 안 좋다고 얘기하려면, 어떤 약은 어떤 장기에 부담을 주고 어떤 약은 어떤 장기에 도움이 된다고 구분을 해야 할 것 아니냐. 그건 양약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부에서 그런 것들은 다 무시하고 무작정 한약이 건강에 해롭다는 무식한 소리만 나열하고 있다. 의료인으로서 환자한테 정확한 정보를 줘야 한다. 이건 이런 소릴 하는 건 의료인으로서 양심도 없는 행위다.
-그런데 의협은 복지부 장관이 양의사 출신이라 양의학계가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건 엄살이다. 실제로 정 장관이 복지부로 오면서 양의사들이 이익을 많이 봤다. 대표적으로 리베이트와 관련해 의료자원과에서 행정처분을 받을 사람이 수천명인데 다 구제됐다. 계속 죽는 소리를 하는데, 우리 입장에선 얻을 거 다 얻고 표정 관리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정 장관이 장관이 돼서 자신들이 정말로 손해를 봤다면 진작 물러나라고 성명을 냈을 것이다.
-일각에선 복지부 내에서 한의학을 담당하는 부서의 힘이 너무 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지부 내에서 한의학정책관실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필요에 의해 법안 하나 낼 수가 없다. 정책관실에서 정책을 하나 추진하고 싶어도 보험정책과, 급여과 등과 업무 협조가 안 되면 아무것도 못 한다. 결국 구조의 문제다.
-한의학과 관련된 질문이다. 한의학이 근골격계질환 치료에는 효과적이지만, 그 밖에 질환에 대해서는 활용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1990년대 들어서 내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한방에 대한 폄훼가 일반화했다. 두 번째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양방 일변도라 한의학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 쉽게 말하면 진료비가 비싸다. 양병원의 경우 감기에 불필요한 항생제를 처방해도 다 보험이 적용된다. 그런데 한의원에서는 꼭 필요한 치료를 해도 보험 대상이 제한적이다. 한약, 봉침 등은 아예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진료비가 비싸면 접근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원산지, 효력 등 한약의 안전성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한약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의약품으로 등록돼 한의원에 유통되는 건 인증을 거쳐야 한다. 시중에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식품’이 문제다. 의약품용 한약재에 대해서는 자율심사뿐 아니라 보건소에서도 수시로 점검을 실시한다. 가장 중요한 게 인증 받은 규격품인가다.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시설을 거쳐 생산된 규격품을 사용했음에도, 그 한약재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건 식약처의 문제다. 2014년 문제가 생겼을 때 당시 식약처장을 직무유기로 고발한 적도 있다. 한약재 사용에 있어서는 어느 기관보다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수가 문제는 계속 제기된다. 현실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인상이 필요한지.
한의원은 양의원보다 진료시간은 2~3배 길지만 초진료가 2580원, 재진료가 2840원 적다. 치료행위별 건강보험 수가도 원가의 20~30% 수준이다. 진찰료는 물론이고, 행위별 수가도 원가 대비 50% 이상은 책정해줘야 한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