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국립소록도병원 등에서 강제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한센인에게 일률적으로 2000만원을 배상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30일 강모씨 등 20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관한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위자료 액수의 산정에도 그 시대와 일반적인 법감정에 부합돼야 한다는 한계가 당연히 존재하고, 그 한계를 넘어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란 이념과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액수의 위자료를 산정하는 것은 사실심법원이 갖는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그런데 원고들에 대한 위자료를 일률적으로 2000만원으로 정한 원심판결에는 위자료 산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그 재량권을 현저히 잘못 행사한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피고의 침해행위가 한센병 예방이란 보건정책 목적을 고려하더라도 수단의 적정성이나 피해의 최소성 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설령 원고들이 수술에 동의했더라도 원고들이 한센병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열악한 사회·교육·경제적 여건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동의한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임신한 여성에게 행해진 임신중절수술은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성과 침습의 정도가 중하고, 형성 중인 생명인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그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경험칙상 강제로 모성을 상실당한 여성의 정신적 고통은 일반적으로 다른 유형의 불법행위로 입게 되는 정신적 고통보다 더 심각하다"며 "한센인 피해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들 상호 간의 형평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데, 동종 사건에서 위자료 액수가 달리 정해졌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7년 제정된 한센인사건법에 따라 정부가 구성한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는 1945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한센인이 수용시설에 격리 수용돼 폭행, 부당한 감금 또는 본인의 동의 없이 단종수술을 당한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강씨 등은 한센병 환자의 치료와 격리 수용을 위해 운영된 소록도병원 등에서 강제로 정관절제수술,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면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 재판부는 일부 한센인의 수술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지만,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한센인 중 정관절제수술 피해자에 대해 위자료 3000만원, 임신중절수술 피해자에 대해 위자료 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유지하면서도 위자료 액수에 대해서는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을 구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2000만원을 인정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달 15일 다른 한센인 19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정관절제수술을 받은 남성 9명에게 3000만원씩,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여성 10명에게 40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들 역시 위원회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아 국가에 소송을 낸 것으로, 이는 대법원이 한센인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었다.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