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지난달 30일 오전 9시 20분. 세종시 어진어린이집 어진반 교실에선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오전 메뉴는 누룽지. 몇몇은 숟가락을 놓고 밥그릇만 바라보고 있다. 간식을 다 먹이는 것도 고역이다. 간식 시간이 끝나니 본격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됐다.
사실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일과는 오전 7시 30분부터다. 이때부터 등원하는 아이들의 기분과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소지품을 스스로 정리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후 간식 시간까진 자유선택 활동 시간이다. 아직 아이들이 다 등원한 게 아니기 때문에 통합 보육실에 모아 자유롭게 놀도록 한다. 기자가 어린이집에 도착했을 땐 자유선택 활동이 끝나고 아이들이 각자 교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진반에는 6세(만 4세) 아이 20명이 있다. 남아 15명에 여아 5명이다. 이 많은 아이들을 2년차 보육교사 조현지씨가 혼자 돌보고 있었다. 누리과정 보조교사가 있었지만 최근엔 건강 문제로 출근일이 일정하지 않다고 했다. 현지씨는 “20명의 아이를 모두 돌보려면 일하는 중엔 쉴 틈이 없다. 전화기도 사용하지 않고, 되도록 화장실도 안 가게 된다”고 말했다.
일과가 시작되면 교실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바뀐다. 그나마 모아놓고 이야기할 땐 아이들이 말이라도 잘 듣는다. 현지씨가 “어진반을 부르면”이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네. 네. 선생님”이라고 답한다. 다시 “사랑해요. 어진반”이라 하면 “사랑해요. 선생님”이라고 화답한다. 나름대로 효과가 있다. 같은 말을 수차례 반복하면 아이들끼리도 딴청 부리는 아이에게 눈치를 준다.
하지만 다시 자유선택 활동이 시작되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한 아이의 콧물을 닦아주고 있으면 다른 아이가 콧물을 흘리며 “선생님”을 부른다. 잠시 뒤엔 ‘띵동 띵동’ 벨이 울린다. 교육교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화장실로 가보라고 했다. 한 아이가 허리를 굽혀 엉덩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벨은 대변을 본 아이가 뒤처리를 해달라는 신호였다.
교실은 쌓기 영역, 역할 영역, 신체 영역 등 8개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보육교사는 각 영역을 돌며 아이들의 놀이를 도와줘야 한다. 남자아이들은 쌓기 영역에, 여자아이들은 미술 영역에 주로 몰린다. 사고는 보통 쌓기 영역에서 발생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사이에서 한 아이가 입술을 쭉 내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쌓기 영역엔 조립용 장난감이 있는데, 한 명당 2개씩 가져가야 수가 맞는 부품을 한 친구가 6개나 가져갔다는 이유였다. 다행히 부품 6개를 가진 아이가 2개만 갖기로 하면서 사태는 해결됐다.
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가 지난달 30일 보육교사 체험의 일환으로 한국교원대학교 유아교육원 유아환경교육관에 현장학습을 나온 세종시 어진어린이집 원생들을 돌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오전 11시. 단체로 손을 씻고 점심 먹을 준비를 했다. 역시나 간식을 안 먹던 아이는 밥도 제대로 안 먹었다. 한 아이는 만둣국만 먹었다. 밥과 돼지고기조림, 오이무침, 김치는 그대로였다. 아이가 만두를 더 먹고 싶다고 해 보육교사의 눈치를 보니 그는 “밥과 다른 반찬도 먹으면 그때 더 주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억지로 밥을 먹느니 만두를 포기했다.
이날은 견학이 잡힌 날이었다. 청주의 한국교원대학교에서 ‘멸종위기동물’을 주제로 한 인형극과 체험이 있었다. 가장 난관은 줄 세우기였다. 실내에선 잘만 통하던 ‘두 줄 기차’가 밖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체감상으론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보다 걸어서 이동하는 시간이 더 걸렸다. 이동 중 작은 다툼도 있었다. 한 아이가 손가락으로 옆 아이를 가리키며 “얘가 저 때렸어요”라고 말했다. 때린 아이에게 “일부러 때린 거냐”고 묻자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다시 “친구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해야지”라고 말하니 아이는 혼나지 않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는지 맞은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손을 잡았다.
어린이집으로 복귀한 뒤 곧바로 간식이 주어졌다. 쑥떡과 유자차였다. 일부러 밥을 잘 안 먹던 아이 옆에 앉아 떡 2~3개를 한 입에 넣었다. 맛있게 먹는 표정을 지으니 다행히 아이들도 따라 먹었다. 오후 4시가 지나자 엄마들이 하나둘씩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왔다. 엄마 손에 이끌려 나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왠지 모르게 서운했다. 현지씨가 아이들에게 “선생님 안아주고 가야지” 말하면 그제야 아이들이 발길을 돌려 품에 안겼다. 오후 5시쯤 현지씨는 남은 아이 5명을 데리고 통합 보육실로 갔다. 기자는 교실에 남아 청소를 했다. 텅 빈 교실엔 아이들의 땀 냄새만 남아 있었다.
보육교사로서 하루는 고됐다. 혼자 20명의 아이를 돌보는 것도, ‘집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행복한’ 아이들을 짝사랑하는 일도 고됐다. 기자가 어린이집을 떠난 뒤에도 보육교사들은 그 어렵고 힘든 일을 위해 통합 보육실에 남았다.
세종=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