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박근혜 정부 당시 보수단체가 동원된 관제 데모에 관한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에 대해 허현준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12일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허 전 행정관은 이날 오전 9시48분쯤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자리에서 "(대기업에) 자금 압박을 한 적은 없고, 전경련에 어려운 민간단체를 도와주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전달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별히 민간단체를 지원하면서 전경련이나 대기업의 대가를 바랄 필요도 없다"며 "전경련이나 대기업은 박근혜 정부에서 처음으로 민간단체를 지원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지원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업이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라며 "왜 이 문제를 거창하게 적폐나 국정농단으로 몰고 가는지 정치 보복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허 전 행정관은 한국자유총연맹에 국정교과서에 대한 집회를 종용하는 취지의 문자를 보낸 의혹에 대해서는 "공직자로서 시민단체와 소통도 하지만, 시민단체에 정부 정책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면서 "자유총연맹은 우리가 문자를 보내기 수개월 전부터 국정교과서와 관련해 활동을 이미 해왔다. 다만 정부 정책이 잘되도록 협조를 얻기 위해 담당자한테 요청한 것은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이날 허 행정관을 상대로 보수단체 지원 경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허 행정관은 특정 보수단체의 이름과 지원금 액수를 지정해 거액의 활동비를 지원하도록 전국경제인연합회를 거치거나 직접 대기업을 압박하는 등 직권남용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6일 허 전 행정관 등 주요 관련자 자택과 시대정신 등 10여개 민간단체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지난 11일 이헌수 전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의 자택과 사무실, 경우회, 경우회 자회사 경안흥업, 애국단체총협의회를 포함한 단체 사무실 등 총 9곳을 압수수색했다. 이 전 실장은 지난 2013년 4월부터 올해까지 기조실장을 역임했으며, 뇌물공여 등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과 2015년과 2016년 약 150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 2월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전경련에 지원을 요구한 보수단체 명단인 화이트리스트의 실체도 밝혀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화이트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된 상태다.
특검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와대는 전경련이 2014년 22개 단체에 24억원, 2015년 31개 단체에 35억원, 2016년 22개 단체에 9억원 등 총 68억원 상당을 지원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팀은 전경련 임직원 등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특정 보수단체에 대해 활동비를 지원하도록 강요받은 사실을 확인했으며, 수사 기간 만료에 따라 사건 기록과 증거 자료를 검찰로 인계했다.
보수단체를 관리하며 시위를 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검찰청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