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늦춰지는 가운데 관치, 연금 사회주의 등을 이유로 재계와 일부 야당이 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주요 재벌기업 1대 또는 2대 주주인 연금이 지배구조 선진화 등 제도 성과를 좌우하는 파급력이 있지만, 그만큼 칼자루를 잘못 휘두르면 부작용도 크다는 우려다. 전문가들은 이를 불식하기 위해 연금 자체의 지배구조를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연금의 기업에 대한 투자규모가 확대되면서 의결권 행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하지만 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일관성이 결여된 모습으로 사회적 비판이 적지 않았다. 2012년 분식회계 전력과 재차 회사자금 횡령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 사내이사 후보에 오르자, 연금은 중립 의결권을 행사해 논란을 야기했다. 2014년 한전부지 인수 결정을 내린 현대차 계열사 임원의 이사 선임 안건에는 반대하기도 했지만,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의결권 행사는 전 정권의 국정농단 뇌물사건 의혹으로 번졌다. 이 때문에 연금의 개별 회사 이슈에 대한 의결권 행사의 일관성과 적극성을 제고하려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요구가 높아졌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모습. 사진/뉴시스
하지만 스튜어드십코드가 시행된 2016년말부터 1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연금 도입까지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연금 도입은 빨라야 올 하반기로 예상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 신년사에서도 도입 활성화를 강조하고, 정부도 연금 도입 방침을 굳혔지만 여전히 반대 주장도 지속 제기되고 있다. 재계는 연금의 이사회 주주활동으로 정부의 경영간섭이 커질 것을 염려한다. 국회에서도 자유한국당 등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시장 경영활동이 제약된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정치인 중심의 수탁자 이사회를 가진 만큼 공적연금의 주주권 행사 의도가 투자자의 장기수익률 제고인지 정치사회 등 공익 목적인지 의구심이 존재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해외에서 공적연금의 주주제안이 주주이익과는 다소 먼 환경, 사회 의제가 많다는 실증결과도 제시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연금의 합리적인 절차와 기준의 일관성을 확보해 자의적 의결권 행사에 대한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금의 지배구조를 보면, 기금운용위는 정부가 위원장을 맡는 등 그런 우려가 있겠다”며 “다만 의결권 전문위는 상당히 중립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돼 따져보면 그럴 여지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연금의 지배구조 문제들 때문에 반대의견이 계속 나오는 만큼, 연금의 거버넌스를 중장기적으로 바꿔 나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조영철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두려운 것은 연금이 가담해 소액주주들의 주권 활동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라며 “하지만 보유 지분이 많아 되파는 것이 어려운 연금은 일반 기관과 다르게 장기적 주주가치를 추구하며 주주자원을 건전하게 이끌 것”이라고 긍정했다.
애초에 자본시장의 5%룰 때문에 연금의 주권활동이 제약된다는 관측도 있다. 연금은 보유주식 대부분이 발행주식의 5% 이상이라 주주제안 시 투자목적을 기존 ‘단순투자’에서 ‘경영참가’로 변경해야 한다. 이 경우 연금은 보유 주식 변동사항을 5일 이내 공시하게 돼 투자전략을 거의 즉각적으로 노출하게 된다. 이로 인해 수익률이 저하될 경우 수탁자책임에 배치되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이에 대해 송 연구위원은 “연금이 주주제안을 하기 부담스러우니 의결권을 엄정 행사하거나 경영진과 면담하는 등 사적대화 방식을 추진하며 적극적인 주주관여를 하는 방법이 있다”고 조언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