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홍 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이번에는 현대차그룹을 겨냥했다.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 ‘추가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가운데, 재계에서는 배당확대 등 이익 추구가 목적인 것으로 예상했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전날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보통주를 10억달러(약 1조500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출자구조 개편안이 고무적이지만 회사와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인들을 위한 추가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엘리엇은 경영진이 현대차그룹 각 계열사별 경영구조 개선, 자본관리 최적화, 주주 환원을 어떻게 달성한 것인지에 대한 더욱 세부적인 로드맵을 공유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엘리엇이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이번에도 깜짝등장을 하면서 의도에 관심이 쏠렸다. 한편에서는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반대하기보다 배당성향 확대나 시세 차익을 노리는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하지 않고 계열사별 주주환원정책을 구체화하라는 요구를 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면서 “합병을 반대하는 것보다 계열사의 주주친화정책이 이뤄졌을 때 이득이 더욱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종가 기준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차의 시가총액은 각각 33조9226억원, 25조5528억원, 13조1135억원으로, 모두 더하면 72조5889억원이다. 엘리엇의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분율은 1~2% 수준에 불과해 영향력이 크지 않으며, 정몽구 회장 일가가 1조원이 넘는 양도소득세 납부를 감수하고 순환출자 해소를 추진하면서 엘리엇이 반대할 명분도 크지 않다. 전례도 있다. 엘리엇이 2016년 10월 삼성전자에 주주제안을 한 후 삼성전자가 배당을 대폭 확대하는 것은 물론 잉여현금흐름의 50% 이상을 환원하고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골자로 하는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했던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를 언급한 후 관련주는 소폭 상승했다. 현대차 주가는 3일 15만2000원에서 5일 15만4000원으로 1.3% 올랐으며, 기아차와 현대모비스도 같은 기간 각각 1.9%, 2.8% 상승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주의 주가 전망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강 연구원은 “엘리엇이 삼성전자에 주주제안을 한 후 배당 확대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는 두 달 동안 4.7%, 1년 간 51.6%나 상승했다”면서 “엘리엇의 요구에 의해 현대차그룹 차원의 추가적인 주주친화정책이 나올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은 주가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김준성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도 “현재 발표된 개편안이 예정대로 이뤄진다면 향후 정 회장 일가가 존속 모비스 지분 인수를 위한 현금확보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를 감안하면 현대차 등 계열사의 배당성향 확대가 예상되며, 엘리엇으로 인해 이 같은 흐름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엘리엇의 제안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고 투자자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라며 “앞으로 국내외 주주들과 충실한 소통을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반면 현대차 노조는 그룹의 순환출자 개편안이 재벌의 사익추구를 위한 방안에 불과하다며 강력 반발했다. 노조 관계자는 “현대모비스의 모듈 및 AS부품 사업부문을 현대글로비스에 합병한다면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의 기업가치 및 주주이익을 훼손하고 현대글로비스의 가치를 높이게 될 것”이라며 “현대글로비스의 최대주주인 정의선 부회장에 대한 특혜라는 점에서 사익추구로 규정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언급한 가운데 업계에서는 배당확대 등 이익추구가 목적인 것으로 예상했다. 사진/뉴시스
김재홍 기자 maroniev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