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면죄부' 된 예방지침) ①"검찰 수뇌부, 성폭력 검사 풀어주려 지침까지 억지 해석"

'진 검사 사건' 당시 대검 지침, '성희롱'만 규정…수뇌부·감찰본부 '강제추행 사건' 끼워맞춰

입력 : 2018-05-29 오후 8:56:12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me too 운동' 기세가 한 풀 꺾이고 있다. 열풍의 발원지인 검찰에서도 막대한 인력을 투입해 꾸린 조사단도 두달이나 가동됐지만 '셀프조사'의 한계만 재확인했다.
'안태근 검사장 사건'에 가려 자세히 조명되지 못했으나, 이른바 '진 검사 사건'은 검찰 내 성범죄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뉴스토마토>는 당시 검찰 수뇌부와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사건 조사를 중지하고 가해자를 퇴직시키는데 근거로 적용한 '대검찰청 성희롱 예방지침'을 입수해 낱낱이 분석했다. 그 결과 '조직 내 성범죄에 대한 검찰의 자세'는 수뇌부부터 그 심각성이 이미 수위를 넘고 있었다. 대검에서 10년간 시행한 '성비위 예방지침' 을 토대로 검찰과 사법부, 더 나아가 정부의 문제점을 짚어봤다.(편집자주)
 
서울남부지검 검사가 2015년 같이 근무하는 후배 여검사들을 강제추행한 이른바 '진 검사 사건’ 당시, 검찰 수뇌부가 ‘성희롱 예방지침’을 성폭력 범죄까지 적용하는 것으로 무리하게 확대 해석해 사건을 덮은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반대로 조사 중단"
 
‘검찰 성추행 조사단(단장 조희진 검사장)’은 지난 4월26일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후배 여검사 강제추행 사건’ 가해자인 A검사가 징계는 물론 감찰을 받지 않고 퇴직한 경위에 대해 “피해 여검사가 조사를 명확히 반대했고, 당시 시행 중이던 대검 지침에는 피해자가 조사를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조사를 중지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어 대검 감찰본부도 이 규정을 적용해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당시 대검 지침이 성비위 사건과 관련한 유일한 규범이 대검 지침이라고 강조했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간 합의는 없었다”면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퇴직 의사를 전달 받고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조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감찰본부나 성비위 관련 조사 담당자 등에게 명백히 밝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대검 감찰본부 등 검찰 수뇌부가 적용한 지침은 해당 사건에 적용할 수 없는 지침이었다. <뉴스토마토>가 최근 10년간 시행된 ‘대검찰청 성희롱·성폭력 예방지침’ 전부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사건이 발생한 2015년 5월 시행되던 대검 관련 지침은 ‘대검찰청 성희롱 예방지침’으로 가벼운 비위 정도의 ‘성희롱’만을 대상으로 할 뿐이다.
 
 
이 대검 지침은 여성가족부가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성희롱 예방지침’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지침 3조는 '성희롱'이라 함은 업무 기타 관계에서 그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기타 요구 등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신분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사건, 지침 적용대상 아니야"
 
그러나 최근 성추행 조사단이 불구속 기소한 A검사의 공소사실은 강제추행으로, 성희롱이 아닌 성폭력 범죄다. 여가부와 대검의 ‘성희롱 예방지침’ 근거 모법인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방지법)’은 둘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성폭력방지법 2조는 "‘성폭력’이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2조 1항에 규정된 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성폭력처벌법 2조 1항은 형법상 ‘강간과 추행의 죄’ 중 강간죄, 유사강간죄 등과 함께 강제추행을 성폭력범죄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사건 당시 피해 여검사가 조사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를 중단했다는 대검 감찰본부와 수뇌부의 설명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당시 검찰 수뇌부가 적용했다고 주장하는 ‘대검 성희롱 예방지침’ 규정은 8조다. 이 규정 1항은 ‘고충상담원은 성희롱과 관련하여 상담·고충의 신청을 받은 경우에 지체 없이 상담에 응하여야 하며, 피해자가 원하는 경우 필요한 조사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조 4항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해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 법령에 의해 다른 기관에서 조사 또는 처리중이거나, 피해자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때에는 조사를 중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피해자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때’의 조사란 고충상담원에 의한 면담 등이다. 감찰조사나 범죄수사가 아니다.
 
검찰 내부서도 "수사로 전환했어야"
 
대다수의 성범죄 사건을 재판하는 법원 전담재판부나 성범죄 전문 변호사, 심지어 검찰 내 성범죄 전담 검사들도 “가벼운 성희롱 사건인 경우에는 피해자가 고충상담원의 조사를 더 이상 원치 않을 경우 조사를 중지할 수 있지만 성폭력 수준의 중한 비위는 지침 적용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보고를 통해 차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진 검사 사건'을 잘 아는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당시 사건은 수사 대상이었다"면서 "감찰 조차 진행되지 않는 것을 보고 검사 중에서도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성범죄 사건 전문가인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는 “피해자가 조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조직기강을 잡기 위해 징계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경우에는 피해자를 진지하게 설득해 동의를 얻거나 제3자를 통해서라도 당연히 진상조사나 감찰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피해자의 의사는 징계의 양정에서 경중을 따질 때 참작하면 된다”면서 “피해자가 원치 않아서 조사를 안 한다면 피해자의 주관적 사정에 따라서 중범죄자는 조사 도 안 받는 일이 있을 수 있고, 오히려 아주 경미한 사람은 조사는 물론 징계를 받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 부끄러운 일 아닌가"
 
김 변호사는 사건 당시 검찰 수뇌부 등이 ‘대검 성희롱 예방지침’을 근거로 조사를 중단했다고 해명한 것에 대해 “검찰이 그런 지침이 있어서 조사 안 한 것이 정당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일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당시 검찰 수뇌부 등의 조사 중단 결정은 법 위반 여지도 있다. 형사소송법 234조는 1항에 ‘누구든지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할 수 있다’고 정하면서 ‘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는 “수사기관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직무를 행하면서 알게된 범죄사실을 공표하는 것도 죄가 될 수 있지만, 지위 등을 이용해 고발을 못하게 하거나 고발하지 않는 것은 직권남용”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지역 법원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도 “위법 여지가 분명히 있다"고 판단했다.
 
성추행 조사단 관계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 “당시 성폭력이라는 타이틀은 없었기 때문에 (당시 결정권자 들은) A검사의 비위(강제추행)을 성희롱, 즉 성비위로 폭넓게 본 것 같다”면서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부부장 검사는 지난 25일 사건 당시 재직했던 김진태 검찰총장과 김수남 대검 차장, 이준호 감찰본부장, 오세인 서울남부지검장 등 6명을 직권남용·직무유기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후배검사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진모 전 검사가 지난 3월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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