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증거인멸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 관계자는 24일, 임 전 차장 자택에서 압수한 USB에 담긴 문건 중 임 전 차장이 퇴임한 이후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문건이 있어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이 USB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압수수색이 사실상 좌절된 상태에서 검찰이 가진 유일한 물증이다.
검찰은 지난 21일 임 전 차장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이 재임시 제작한 법원행정처 업무자료 백업본이 저장된 USB를 확보했다. 이 USB에는 임 전 차장 재임시 작성된 업무자료만 담겨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스스로 폐기했다던 USB가 확보되면서 내부에 저장된 자료의 시간적 한계가 깨진 것이다. 특히 임 전 차장은 지난해 3월 사퇴하면서 자신의 컴퓨터 파일을 백업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특조단의 '형사처벌 사안 안됨' 결론이 나온 뒤 폐기했다고 거짓으로 해명했다.
검찰은 현재 법원행정처에 근무하거나 법원행정처 근무했던 법관이나 법원 내부 인물이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된 내부 동향이나 정보를 임 전 차장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임 전 차장이 퇴임 전 처리하지 못한 자료 중 자신에게 불리한 물건이나 문건에 대한 처리를 법원행정처나 법원 내부 인물에게 부탁했을 것으로도 의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증거인멸 교사 가능성 부분도)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에 앞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 이번 사태 핵심관련자들에 대한 출국을 금지했다.
검찰이 인적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사법농단 의혹 관련 문건 등 법원행정처로부터 넘겨받기로 한 증거자료 접수에는 애를 먹고 있다.
법원행정처와 검찰에 따르면, 현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근무자 중 6명의 PC하드디스크를 검토 중이지만 검토 범위를 두고 양 기관의 입장 차가 큰 상황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법정책실 인사자료와 재판연구관 자료 등은 법원행정처로부터 지시를 받아 행동한 사람에 대한 자료이기 때문에 검토해야 하는데 이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메일이나 메신저 역시 조사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지만 제출받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법원행정처 역시 할 말이 없지 않다. 법원행정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같은 말을 반복할 수 밖에 없어 유감이지만, 법원이 증거자료 제출 과정이라고 해서 또 다른 위법을 저지를 수는 없다. 늦더라도 원칙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앞서 기각된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자택 및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재청구 여부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검찰 관계자는 "임 전 차장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상당부분 증거를 확보했다. 산발적으로 전달한 자료를 포함한 것"이라면서 "법원행정처가 넘긴 양 전 대법원장의 PC하드디스크는 복구가 어려운 상황이다. PC확인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 그를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은 본인에게 받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법원이 압수수색영장 청구를 기각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디가우징 된 양 전 대법원장의 PC 복구를 전문업체와 함께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임 전 차장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증거물 분석이 끝나는대로 임 전 차장을 소환조사하고, 이어 박 전 처장 또는 양 전 대법원장을 불러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사법농단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