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왜 '양승태 압수수색 영장' 법관 기피신청을 안했나

'영장기각' 이언학 판사, 공정성 논란…박병대 전 처장 고법부장 시절 배석판사

입력 : 2018-07-23 오전 2:30:00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면서 공정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 사건의 강제수사에 대한 법원의 영장 심사에 대한 우려는 수사 초기부터 제기됐다. 그러나 검찰의 첫 영장이 기각됐고, 영장을 심사한 판사가 압수수색 대상 중 한명과 같은 부서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한 이력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심사한 판사는 이언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다. 최근 8년간 대법원과 서울고법 재판부 구성표를 확인한 결과 이 부장판사는 박 전 처장이 2010년 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서울고법 행정9부 재판장으로 근무할 때 배석판사였다.
 
재판부가 같지는 않지만 이 부장판사와 박 전 처장은 같은 시기 대법원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다. '2011년 대법원 재판부 구성표'에 따르면, 박 전 처장이 대법원 소부 제1부에서 근무할 때 이 부장판사는 소부 제2부 이상훈 대법관실 전속조 재판연구관이었다. 
 
합의재판부는 재판장과 좌·우배석판사가 합의를 거쳐 사건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내린다. 말 그대로 ‘합의’기 때문에 둘 이상의 의견 일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원 구성상 부장판사인 재판장과 평판사인 배석판사의 관계는 도제식 관계라는 것이 법조계 정설이다. 그만큼 배석판사에 재판장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지방법원에 비해 비교적 상당한 경력을 가지는 고등법원 배석판사와 재판장의 관계도 같다.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을 한다지만 지금과 같은 사례에서 뒷말이 나오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영장을 청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의 경우 이 부장판사와 박 전 처장의 관계를 알았더라도 회피나 기피신청을 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대법관 출신인 압수수색 대상자와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같이 근무했다는 사실 자체는 법적으로 기피신청 요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이 영장 청구 전 이 사실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법관의 양심’을 의심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금기시 한다는 불문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실무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검찰 설명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압수수색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어느 판사에게 심사가 배당될 지 알 수 없으며, 물어봐도 법원에서 알려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국회와 법조계에서는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이미 제기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6월25일,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이찬희)가 주최한 ‘사법농단사태로 비춰 본 사법개혁 방안 긴급토론회’에서 “수사 과정에서 영장발부 등 법원이 수사 협조를 확보하기 위해 시민사회가 추천하는 법관들이 위원회를 만들어 영장전담을 담당할 법관을 추천할 수 있는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재판거래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도 필요하다”면서 “이 역시 특별법 제정으로 재심사유를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지금까지 ‘사법농단’ 의혹 수사는 물론, 이후 진행될 재판에 대한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송기춘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와 관련해 “우선 사법부 스스로가 공정성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서 방안을 마련하고, 이번 사건을 판단하게 될 법관 스스로도 법원의 독립성이 의심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스스로 회피하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이어 “그러나 사법부와 법관이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특별법을 통한 ‘특별판사’ 도입 논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7년 6월1일 퇴임한 박병대(오른쪽) 당시 대법관이 자신의 퇴임식에서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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