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강제수사 시도가 또 좌절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0일 “유해용 변호사가 무단 반출한 대법원 재판자료에 대해 재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이 사실상 모두 기각됐다”고 밝혔다.
유 변호사는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근무 당시인 2016년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통진당 사건 전합회부에 관한 의견' 등을 건네받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의료진’이 진행 중인 특허소송에 대한 소송기록을 수집해 당시 청와대에 건넌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올해 2월 퇴직하면서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열람했던 보고서 등 대법원 재판기록 수만 건을 빼돌렸다는 의혹도 있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대법원 기밀 유출’ 혐의로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유 전 연구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박채윤 씨 특허소송 상고심과 관련해 재판 쟁점 등을 정리한 보고서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통해 청와대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에 따르면,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받은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영장을 심사한 뒤 ▲유 변호사가 김모 수석연구관으로부터 통진당 소송과 관련해 받거나 작성한 자료만 압수할 것 ▲PC 등을 조사하기 위해 입력하는 검색어에 대해서는 해당 사건의 사건번호만 허용 ▲PC 등 조사시 법원행정처 관계자를 참여시킬 것 등을 조건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나머지 청구에 대한 기각 사유로 ▲유 변호사가 대법원 재판자료를 반출, 소지한 것은 대법원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가 되지 않는다는 점 ▲유 변호사가 반출·소지한 자료를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하는 것은 재판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 ▲징용소송·위안부 수송·전교조 소송에서 법원행정처 문건이 재판의 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날 “해당 사안은 실정법 위반으로 수사되어야 할 사항이지 '대법원의 입장에서만' 부적절한 행위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절도·정보통신망법 위반·공무상기밀누설·공공기록물법위반·형사사범절차촉진법 위반 등 형사처벌 대상 여부를 가리기 위한 엄정한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사실관계를 확정하기도 전인 압수수색 단계에서 어떠한 죄도 안 된다고 단정하는 영장판사의 판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영장판사의 판단 대로 라면 ‘수사기관이 취득하면 재판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는 것이고, 민간 변호사가 취득하는 것은 아무런 죄도 안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미 재판의 본질적인 부분은 불법반출로 이루어진 것이고, 수사는 그 진실과 책임소재를 가리자는 것인데 어떻게 그런 순환논리로 수사를 무조건적으로 막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법원이 이미 징용·위안부·전교조 소송에 대해 청와대와 외교부, 고용부 등과 법원이 협의한 사실과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에 복수의 대법관이 가서 회의까지 한 사실 등이 소명됐다고 보고 외교부 등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한 상황에서, 지금에 와서 이런 식의 판단을 하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고 말했다.
이어 허용된 압수수색 집행시 법원행정처 관계자의 동석을 조건으로 제한한 것에 대해서도 “유 변호사가 만든 비선의료진 관련 문건을 전달받은 곳과 유 변호사에게 전달된 통진당 문건을 만든 핵심 범행 주체가 법원행정처”라면서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압수수색에 참관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유 변호사가 무단반출한 자료는 다수 중대한 혐의에 대한 주요증거이기 때문에 추가 수사를 통해 압수수색 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다.
한편, 유 변호사는 이날 변호인을 통해 “특허법원으로부터 상대방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의 수임내역 등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고 통진당 사건과 관련해 해당 문건을 대법관이나 담당 연구관에게 전달한 적도 없다”며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