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3년 만에 다시 국회 문턱 넘기에 도전하는 국내 의료용 대마 합법화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며 물꼬를 텄다. 이를 두고 환자 치료 선택권을 넓히기 위해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마약류에 대한 국민 안전성이 위협받을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열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수정 의결했다.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한 의료용 대마 공급을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해당 법안은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이 발의한 것으로, 발의 8개월여 만인 지난달 28일 상정됐다.
다만 위원회는 마약류로 분류된 대마의 오남용 위험성 방지 차원에서 발의안에 포함된 개인 휴대의 경우를 제외하는 것으로 수정 의결했다. 수입량과 환자 제공량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보고하고, 매년 마약류 불법 유통 현황을 점검해 의료용 대마 합법화로 인해 우려되는 안전 관리에도 힘쓴다는 계획이다.
의료용 대마 합법화와 관련된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 19대 국회 때도 합법화 관련법이 발의됐지만 반대 의견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반대 의견의 중심이 된 논리는 마약류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이다. 때문에 그동안 국내에서는 공무 또는 학술연구 목적을 제외한 대마의 수출입 및 제조, 매매 등이 원칙적으로 금지돼왔다.
하지만 환자에게 극심한 고통이 따르는 질환에 대한 대체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최근 해외 허용 의약품인 '카나비디올(CBD)오일(대마 추출성분)' 등을 해외에서 직접구매하다가 세관에서 적발되는 사례가 크게 늘며 국내 규제 완화 필요성도 목소리가 높아졌다. CBD오일은 다수 해외 논문을 통해 난치성 뇌전증에 대한 효과가 밝혀진 상태지만 국내 반입은 불법이다. 하지만 허가된 미국 내에선 온라인 사이트 등을 통해 손쉽게 구입이 가능하다.
한국카나비노이드 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CBD오일을 해외 직구했다 적발된 사례는 지난해 80건이다. 적발자들 대부분은 뇌전증을 앓고 있는 환자 가족들이다. 치료목적으로 불법인지도 모르고 구입했다가 마약 사범이 된 경우다. 한국카나비노이드협회는 의료용 대마 합법화를 촉구하며 이달 출범한 비영리사단법인으로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가 전신이다.
한국카나비노이드협회 소속 강성석 목사가 지난달 의료용 대마 합법화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해외 선진국의 경우 의료용 대마는 대체로 허용하는 쪽으로 가는 분위기다. 미국은 전국(50개주)의 절반이 넘는 29개주가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한 상태고, 이웃 국가인 일본 역시 의료용 대마의 유통은 허용된다. 기존 연구용 대마의 대학 재배 허가만을 유일하게 허용했던 뉴질랜드 역시 최근 개인 회사가 의료용 대마를 합법적으로 재배할 수 있도록 허가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부터 의료용 대마초를 합법화한 캐나다는 다음달 부터 국가 전역에 걸친 대마초 재배와 소비를 합법화한다. 의료용 뿐만 아니라 기호용 대마초까지 합법화한 나라는 캐나다가 주요 7개국(G7) 가운데 최초다. 전 세계에선 우루과이에 이어 두 번째다.
이처럼 주요 해외국가들이 환자 치료선택권 확대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의료용 대마 합법화 움직임이 일자 환자단체를 비롯한 찬성파들은 반색하고 있다. 대마보다 환각성 또는 중독성이 더욱 강력하다고 알려진 암페타민이나 헤로인 성분 의약품은 허용된 상황에서 대마를 반대하는 게 논리에 맞지 않으며, 의료용 대마 허용시 환자들의 숨통이 다소 트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카나비노이드협회 소속 강성석 목사는 "환자 선택권 확대를 위해 가야할 길은 아직 멀지만 유독 의료용 대마에 대해 과도하게 제한해온 국내에서 결정된 이번 개정안 가결은 국회 차원에서 의료용 대마의 효능을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국가가 관리하는 의약품센터를 통해 공급이 시작되면 대마에 대한 오해들이 풀리고 규제 역시 차차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대마 규제가 마약류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져온 만큼 한번 규제 완화되면 이후 상황을 걷잡을 수 없을 것이란 우려도 존재한다. 국내 연구 사례가 부족한 데다 효과를 본 환자군 또한 적은 상황에서 충분한 연구와 관리체계 구축 이전까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관계자는 "대체 치료제가 없는 환자 치료선택권 확대를 위한 도입 취지는 존중하며 합당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연구 자료가 충분한 해외와 다른 국내 상황에서 해외국가가 도입한다고 국내 역시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보다는 충분한 연구를 통해 안정적으로 도입해야 추가적인 마약 문제 확대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