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경쟁력 제고를 위한 글로벌 제약사들의 공격적 M&A 배경엔 각 사별 결단력만큼 과감한 각 국 정부의 지원사격이 존재했다. 국내 정부가 제약 산업을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그에 걸맞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국내 제약 산업의 가장 큰 경쟁국으로 꼽히는 일본의 경우 70조원 규모 빅딜을 통해 샤이어를 품에 안은 다케다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은 지난해 1000건 이상, 213조원 규모의 M&A를 성사시켰다. 줄곧 중국에 내줬던 아시아 1위 M&A 왕좌도 6년 만에 탈환했다.
일본 제약 산업은 1990년대 중반 대대적 규제 개혁을 기점으로 급성장 궤도에 올랐다. 당시 일본 정부는 '산업재생법'을 도입해 M&A을 실시한 기업에 파격적 세제 혜택과 연구개발비를 지원하고, 기업 합병절차를 간소화했다.
이에 다케다, 다이찌산쿄 등 다수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필요한 비용 마련을 위해 적극적 M&A에 뛰어들었고, 외형 확대와 신약 개발 여력을 동시에 잡으며 글로벌 50위 제약사 가운데 10개사를 자국 기업으로 채우는 데 성공했다. 국내 1위 제약사 유한양행이 80위권에 머물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과거 '내수 집중, 복제약 과열경쟁'의 구조로 국내와 닮은꼴이었던 일본 제약 산업이 단기간 내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 같은 정부의 규제완화를 통한 생태계 조성 덕분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글로벌 빅딜을 주도한 BMS, 길리어드 등 미국 제약사들의 배경에도 2017년 트럼프 정부 세제 개혁에 따른 현금 확보가 힘이 됐다. 실제로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에 따르면 미국의 세제 개혁 이후인 지난해 상반기 212건의 제약사 M&A가 진행되며 전년 동기 151건 대비 25% 이상 늘었다. 여기에 국내 대비 한 수 아래의 기술력으로 평가되지만 방대한 내수 시장을 보유한 중국과 인도 역시 최근 조금씩 빗장을 열며 잠재력 폭발을 위한 시동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규제 완화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M&A 물결 속 국내 정부는 여전히 깐깐한 규제로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7년 국정과제에 제약·바이오산업을 포함시키고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지만, 당면과제인 규제완화 보단 보여주기식 시범사업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업계는 투입되는 예산과 노력 대비 체감되는 변화가 미미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뜩이나 신약 개발이라는 부담을 안고 규제사업을 펼치는 국내 제약사들이 제도적 지원 없이 M&A에 뛰어들기란 현실이 녹록지 않다고 말한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근본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R&D 투자 차원에서 M&A가 글로벌 주요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라며 "국내 제약사들도 M&A 활성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세제 감면이나 절차상 간소화 등 정책적 지원도 적극 검토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