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사법농단 의혹으로 강제징용 재판로비 정황이 드러났지만 김앤장의 불법과 탈법을 넘나든 변호는 처벌과 징계를 모두 피했다. 무너진 사법질서와 변호사자치 앞에서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앤장 소속 한상호 변호사는 2012년 대법원이 1·2심까지 전범기업에 유리하게 전개되던 강제징용 사건을 파기환송하자 이를 뒤집기 위해 김앤장 고문으로 있던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 주미대사를 지낸 현홍주 변호사 등과 팀을 꾸려 외교부·대법원·청와대 인사를 접촉하고 동향을 파악한 사실을 증언했다.
검찰이 법정에서 제시한 김앤장 압수 문건 중 '클라이언트 반응. 2014.11.12. 전화통화'로 시작하는 메모에선 '지금까지는 법원에 대해 준비서면 의견서 등으로 주장해왔으나 대법원을 설득할 필요가 있고 시기가 무르익었음. 그러한 간접적인 설득방안을 추진하는 것에 관해 송무팀 탑 시니어가 상의드릴 기회를 조속한 시일 내에 갖고 싶음'이란 내용이 나왔다. '내부적으로도 극비'라는 문구와 함께 미쓰비시·신일철주금을 뜻하는 약자가 이어졌다.
2015년 작성 문건 중 '2/26 BH 동향'엔 '비서실장 교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곽병훈) 법무비서관에게 본건 챙겨보라고 당부하심. 외교부, 법무부 보고서 있음. 2012년 판결 문제점 지적하는 내용이나 법무부 보고서는 취지가 애매함. 법무비서관에게 상고이유서 및 쟁점 요약본 전달' 등 내밀한 정부 동향이 나왔다. 정보 입수 경위에 대해 한 변호사는 "곽 비서관과 현 전 주미대사, 임종헌 실장으로부터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동향 정보를 전범기업에도 전달했는지에 대해서는 '업무상 비밀누설'이 된다는 이유로 증언을 거부했다.
김앤장 내부에서도 극비로 처리했을 것으로 보이는 '동향' 수집과 '간접적 설득방안'을 통상적인 변호활동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한 변호사는 대법원장 집무실과 일식당 등에서 여러 차례 양 전 원장을 만나 강제징용 사건 이야기를 나눈 사실도 모두 인정했다. 재판과 같이 공식적 의사결정을 하는 국세청 국세심사위원회의 한 위원은 "지금은 돈을 주는 게 로비가 아니다. 옛날처럼 뇌물을 주고 향응을 제공하면 형법상 뇌물죄나 부정청탁금지법 위배로 처벌될 수 있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서 "사건 관련자들이 직접 혹은 제3자를 통해, 보통은 설명할 기회를 달라고 하면서 따로 접촉해 사건 얘기를 하는 게 지금의 로비"라고 말했다.
강제징용 재판 개입은 피고인 양승태의 주요 혐의지만, 재판로비를 실행한 김앤장과 한 변호사는 어떤 처벌도 징계도 받지 않았다. 사법농단 문건 작성자로 증언대에 선 일부 법관들이 "반성한다"며 참회의 울먹임을 보이기도 했던 것과는 달리, 한 변호사는 아무 언급이 없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으로 활동하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 이유로 "법관들은 일종의 부정처사에 해당되지만 변호사를 처벌할 법률은 없다"고 짚었다. 한 교수는 "그렇더라도 변호사 개인도, 김앤장도, 변호사협회 차원에서도 누구 하나 책임을 추궁하거나 잘못했다고 사과한 게 없다"며 "어떤 면에선 좀 뻔뻔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변호사 단체가 윤리 위반으로 일종의 징계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아마 징계시효도 지났을 것"이라며 "사법의 중립성이나 사법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훼손한 행위이기에 변호사로선 결코 해선 안 되는 일인데 변호사법이 이런 부분에선 너무나 무력하다"고 토로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강제징용 재판로비 정황이 드러났지만 김앤장의 불법과 탈법을 넘나든 변호는 처벌과 징계를 모두 피했다. 사진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본사 로비 모습. 사진/뉴시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