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통유리창 볕 좋은 집에 들어서면 토끼굴 같은 '음악 공방' 필로스플래닛 스튜디오가 나왔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여기에요. 저와 소카베씨가 작업한 곳.”
지난달 20일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인근. 싱어송라이터 에몬(32)이 아늑한 공간으로 안내했다. 흡사 새 둥지처럼 조성된 그곳은 독립 창작 스튜디오 ‘필로스플래닛’. 전선들로 엉킨 입구의 기계 장비를 지나면 토끼굴 같은 ‘음악 공방’이 펼쳐졌다. 모니터 한 대 사이로 레코딩, 믹싱, 마스터링 장비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나선형 계단으로 이어진 2층은 이들의 거주 공간이었다.
2010년 설립된 이 곳은 인디신의 ‘산실’ 역할을 해오고 있다. 독립 음악 제작 레이블에서 시작한 공간은 레코딩, 믹싱, 마스터링 스튜디오로 활동 범위를 넓혀왔다. 음향 엔지니어로 활동하는 신재민 대표와 에몬 등 소속 뮤지션들이 함께 도움을 보태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음악신과도 접점을 늘려 지속적인 교류, 공동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서니데이서비스, 키세루, 램프, 카네코아야노밴드 같은 뮤지션들과 교류를 토대로 몇몇 팀과는 실제 음악 협업을 진행했다. 서울과 도쿄 뮤지션들이 주축이 되는 ‘Love City, Seoul & Tokyo’는 필로스플래닛의 대표 기획 공연. 지난 10월에는 카네코아야노와 술탄오브더디스코 지윤해, 소카베와 에몬의 합동 공연이 열렸다.
“독립 창작이란 게 저희에겐 제일 중요한 개념이죠. 자신이 직접 만든 곡을 녹음하고 음반으로 만들고…. 포크부터 센 록까지, 우리들 장르는 다양해요.”
소카베 케이이치가 솔로 앨범 'Heaven' 마스터링 작업을 한 필로스플래닛 스튜디오. 음향엔지니어 겸 필로스플래닛 대표 신재민씨(왼쪽)와 소카베. 사진/에몬
10여분 전, 에몬과 있던 곳은 인근 카페였다. 자리에는 소카베 케이이치(48)도 함께 있었다. 소카베는 90년대 일본에서 비틀즈풍 음악을 하던 밴드 서니데이서비스의 프론트맨. 록 사운드를 기반으로 그는 최근 힙합, 일렉트로니카, 시티팝 등 다면적 시도들을 해오고 있다.
최근 공연뿐 아니라 앨범 작업 때문에 한국을 자주 찾고 있다. 지난해 솔로 앨범 ‘Heaven’의 마스터링도 필로스플래닛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 평생 도쿄 시모키타자와를 ‘음악 거점’ 삼던 그가 서울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스튜디오 만의 아날로그적 사운드, 한국 음악 동료들의 따뜻함.
“음악 친구들이 공동으로 모여 지내는 아주 이상적인 스튜디오였습니다. 마스터링(믹싱 이후 음정을 보정하는 작업) 시 따뜻한 아날로그 소리를 냈으면 했는데 이 곳에서 원하던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최근 일본에서는 이런 스튜디오가 감소 추세에 있어요.”(소카베)
일본 도쿄 키치죠지에서 서로의 앨범을 교환하는 에몬(왼쪽)과 소카베. 사진/필로스플래닛 신재민 대표
이 곳에서 마스터링을 거친 에몬과 소카베 음악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통성을 획득한다. 옛 정서가 아른거리는 노스탤지어틱한 소리들. “에몬씨가 이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사운드라 생각해요. 저는 그 따스한 소리를 기반으로 어디까지 더 공격적이고 두터운 사운드를 낼 수 있는지 실험했어요.”(소카베)
에몬과 소카베가 처음 대면한 건 2015년. 당시 소카베의 내한 공연 때 에몬은 무대 스텝으로 인사를 나눴다. 사실 그전부터 에몬은 소카베의 오랜 팬이기도 했다. 10년 간 서울과 도쿄를 부지런히 오가며 그를 쫓았다. “소카베씨가 저는 일본 현지 팬들보다도 일본 음악을 잘 아는 팬 중 하나라 하시네요.”(에몬) 이날 인터뷰 내내 일어 통역을 돕던 에몬은 자신의 이름이 거명될 때마다 고개를 푹 숙이며 얼굴을 붉혔다.
스텝 이후 에몬과 소카베는 음악적, 인간적으로 교류해오고 있다. 차를 마시고, 한일 레코드 샵을 방문하는 것부터 서로의 음악을 들려주고 공연에 초대한다. 전날 홍대 벨로주에서도 두 사람은 한 무대에 섰다.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로만 생성하는 따스한 소리. 그곳은 서울인지 도쿄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소리는 결국 국경을 지웠다.
[뉴스토마토 10월 31일자 기사 참조, (리뷰)에몬과 소카베, 서울과 도쿄]
지난달 서울 합정 벨로주에서 열린 ‘Love City, Seoul & Tokyo’ 후 소카베와 에몬, 관계자들. 사진/ⓒChihiro Kudo
“노래라는 건 결국 만든 사람 개인의 이야기나 기록, 세계관이지만 들려주는 과정에서 청자와 ‘감정적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 같아요. 또 워낙 서로의 노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어제 공연이 유기적이지 않았나 싶어요.”(소카베)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