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데이브 그루신·리 릿나워, 퓨전 재즈 전설은 현재 진행형

12일 밤 서울 용산구 한남동서 13년 만에 단독 합동 내한 공연
밝고 부드러운 캘리포니아 햇살 연상…'GRP 사운드'에 관객들 열광

입력 : 2019-11-15 오후 7:43:5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동시대 재즈계를 발칵 뒤집은 'GRP 사운드'가 왜 밝고 부드러운 캘리포니아 햇살을 연상시키는지 절감했던 순간이었다.
 
12일 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 퓨전 재즈계의 전설적 인물 데이브 그루신(85·피아노, 키보드)과 리 릿나워(67·기타)를 영접했다. 역사상 최고 퓨전 재즈 레이블 GRP(Grusin/Rosen Production)를 끌어온 그 공신들 맞다. 
 
그루신은 GRP의 오너이자 퓨전과 크로스오버 계열 음악 장르를 정착하는 데 공헌한 인물. 세계적인 키보디스트이자 영화음악 작곡가로, 퓨전재즈를 대중화시켰으며 그래미상을 10번이나 들어올렸다. 1985년 리 릿나워와 함께 발표한 'Harlequin' 앨범 수록곡 ‘Early AM attitude’, ‘Harlequin’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의 대표곡이다.
 
릿나워는 퓨전 재즈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라 평가받는 인물. 실제로는 허비 행콕, 소니 롤린스 등 재즈 뮤지션부터 핑크 플로이드 같은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스티비 원더 같은 팝 뮤지션들까지 그의 손을 거쳐갔다. 재즈, 팝, 소울 이후 브라질리안 음악까지 아우르는 유연한 손가락을 가르켜 '캡틴 핑거'라는 별칭으로도 부른다. 세션을 거친 곡은 3000곡이 넘고, 그래미상에 17번이나 호명된 기록을 썼다. 'Rio Funk', 'Night Rhythm', 'Is It You'는 세계적인 릿나워의 곡이다.
 
단독 공연 차 두 사람이 이날 합동 내한 무대를 꾸민 것은 무려 13년 만. 건강과 캘리포니아 산불로 인한 개인적 이슈, 홍콩 정치적 상황 등으로 취소될 뻔했던 이날 공연은 두 뮤지션의 강렬한 의지로 결국 성사됐다. 
 
저녁 8시 3분경, 두 거장은 느릿한 걸음 만으로도 관객들의 심박수를 진동시켰다. 거대한 함성에 웃음짓던 릿나워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객석을 찍자 곳곳에서 웃음과 박수갈채가 터졌다. 
 
그루신이 키보드 앞에 앉고 릿나워가 기타를 든 순간 장내 온도는 더욱 뜨거워졌다. 안경을 눈 밑으로 내려 쓴 그루신이 신중히 건반과 교감하는 동안, 릿나워는 깁슨기타로 밝고 경쾌한 멜로디들을 쏟아냈다. 초반 격렬한 연주 탓에 기타줄이 풀리기도 했는데, 릿나워는 웃음 지으며 다시 메고 연주를 이어가는 여유도 보였다. 
 
물 흐르 듯 유연한 릿나워의 손길과 6줄 기타 현의 뭉근한 울림, 햇살처럼 따스하고 경쾌한 그루신의 건반은 꼭 다른 차원의 시공을 여는 것 같았다.
 
그루신이 야마하 Motif XF 건반과 그랜드 피아노를 오가며 스무스하게 연주할 때, 스타카토식으로 통통 튕겨대는 릿나워의 깁슨 기타는 곧 하늘로 비상할 것 같았다.
 
가장 큰 함성은 공연 중후반 릿나워의 곡들에서 터져나왔다. 두 거장과 함께 이날 무대를 채운 두 연주자, 멜빈 리 데이비스(베이스)와 리 릿나워의 아들 웨슬리 릿나워(드럼)의 리듬 폭격이 최고조에 달하던 'Night Rhythms', 'Rio Funk'의 순간. 멜빈의 뜯는 듯한 베이스 터치와, 웨슬리의 파워넘치는 드러밍은 두 거장의 묵직함에 발랄을 더해 공연 자체를 더욱 역동적으로 느끼게끔 했다.
 
'Early AM attitude', 'Harlequin' 같은 그루신의 대표곡들은 연주되지 않았다. 일반 대중들 귀에 익숙하지 않은 곡들을 전체적인 셋리스트로 구성한 이날 공연은 살아있는 거장들의 음악적 고집을 엿보게도 했다.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피아노에 앉아 홀로 연주한 그루신의 솔로무대는 압권이었다. 닉 놀테와 채즈 팰민테리 주연의 영화 'Mulholland Falls' 사운드 트랙을 들려주던 그 순간 , 객석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와 적막으로 가득했다. 고령의 나이에도 현재진행형인 두 거장은 그렇게 1시간 반 동안 GRP의 역사를 그대로 수놓고 갔다.
 
1, 2층까지 1500여석에 달하는 좌석 90%가 매진된 이날 공연은, 중년층이 압도적이었다. 재즈 뮤지션이거나, 재즈계에 종사하는 이들 역시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루신 할아버지, 미국 카페에서 안경끼고 영자 신문 보는 할아버지 같지 않았어?" "마지막 베이시스트 리듬, 릿나워 속주, 우리도 살아생전 그렇게 연주해 볼 수 있을까?"
 
공연장을 나서는 동안, 재즈 뮤지션들로 보이는 이들의 유쾌한 대화가 귀에 꽂혔다.
 
데이브 그루신, 리 릿나워 합동 공연.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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