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조성진 “30분 곡 한 번에 녹음…슈베르트 상상력에 초점”

5월8일 새 앨범 ‘방랑자’ 발표…도이치 그라모폰 네 번째 레코딩 앨범
“슈베르트 보며 '나는 뭐 하고 있지?' 고민…내년 20대 후반 다음 앨범 쇼팽될 것”

입력 : 2020-04-14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어떤 작곡가(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는 25살에 그런 작품(‘방랑자 환상곡’)을 썼는데, 나는 지금 뭐 하고 있지?”
 
한국인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27)의 머릿속엔 이런 질문이 맴돌고 있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뒤 5년은 쏜살같았다. 도이치 그라모폰(DG)과 5년 전속 계약, 뉴욕 카네기홀 데뷔, 베를린 필하모닉 협연…. 검은 머리를 찰랑이며 세계를 놀라게 한 이 앳된 청년도 내년이면 20대 후반이다. 
 
13일 서면으로 만나본 그는 슈베르트 이름에다 20대 초반 피아노 콘체르토를 작곡한 브람스까지 얹으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제는 책임감을 더 느낀다”는 그는 음악인으로서의 자신에 관해서는 한없이 냉정했다. 여전히 스스로를 겸손하게 여기고 채찍질한다. “제 스스로 ‘성장’ 했는지는 아직 확신이 없어요. 앞으로도 제 커리어를 유지하는 게 큰 도전일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조성진. 사진/Christoph Köstlin, DG
 
조성진은 오는 5월8일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네 번째 앨범 ‘The Wanderer(방랑자)’를 발표한다. 19세기 유행한 낭만주의 시대의 주 키워드 ‘방랑’을 앞세워 비슷한 시기 작곡된 곡들을 엮었다.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과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S.178’, 베르크 ‘피아노 소나타 Op.1’. 지금까지 쇼팽, 드뷔시, 모차르트 등 한 작곡가의 작품만 녹음해오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세 곡 모두 소나타 형식으로, 쉼 없이 악장이 전개되는 점이 특징이다. 한 장의 콘셉트 앨범으로 구상한 것은 이 때문이다. 모아보면 ‘한 악장의 소나타’처럼 들린다. 
 
“방랑이란 용어는 낭만주의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단어였어요. 슈베르트는 물론 리스트 같은 작곡가들이 당시 여기저기 떠돌고 여행하며 작곡했죠. 지금의 피아니스트나 뮤지션과도 공통성이 있지 않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조성진 도이치그라모폰 네번째 앨범 ‘방랑자(The Wanderer)’.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이 앨범의 전신은 단연 프란츠 슈베르트다. 슈베르트의 음악적 ‘방랑’은 당대 낭만의 요체였다. 반복적 악구, 둥둥 부유하는 화성…. 슈베르트가 19세 때 이 곡의 모티프를 착상했다는 점에선 언뜻 ‘방랑자’ 조성진도 아른거린다. 비슷한 나이 대 조성진은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2017년부터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겼다. 연주 때는 한국을 포함해 세계를 도는 게 일상이다.
 
“초창기 땐 어디가 ‘진짜 집’인지 잘 구분이 안 될 때도 있어요. 항상 돌아다니며 연주하는 게 제 직업이니까…. 지금은 ‘제가 있는 곳이 결국 집’이란 결론을 내리게 됐죠.”
 
‘방랑’은 때론 고독과 닿아 있으나 그는 “외로움은 가끔 느낀다”고만 했다. “어릴 적부터 외동아들로 커왔기 때문에 혼자 있는 걸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연주 때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다른 뮤지션과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까,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피아니스트 조성진. 사진/Christoph Köstlin, DG
 
기술적으로 난해하다고 알려진 곡들을 엮은 것도 이번 레코딩의 특징이다. 앨범에 수록된 슈베르트와 베르크는 지난해 6월 베를린에서, 리스트 소나타는 지난해 10월 함부르크에서 각각 녹음됐다. 
 
특히 ‘방랑자 환상곡’은 슈베르트 자신도 “너무 어려워 칠 수 없다”고 한 곡. 조성진은 “기술적으로 슈베르트 곡중 가장 어려운 곡”이라고 정의하며 “어려운 테크닉을 감추는 게 이 곡을 연주하는 가장 어려운 점”이라 했다. 그는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면서 어렵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아름답구나, 드라마틱하구나, 서정적이구나 느끼게 하려 했다. 2018년 말부터 이 곡을 연주했고 무대에 오를수록 편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리스트 소나타의 경우 30분 짜리 곡을 한 번에 녹음하는 과정이 어려웠다고 했다. “최대한 라이브처럼 들리게 하려 하다보니 부분, 부분을 나누지 않고 한 번에 가게 됐다”는 그는 “레코딩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관객 앞에서의 연주보다 어려운 작업이라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때문에 종종 관객 20~30명 앞에서 실제 연주회처럼 레코딩을 하기도 한다.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의 경우 연주회 때의 테이크를 실제 녹음에 활용했다. 베르크 소나타 역시 프로듀서 2~3명 앞에서 연주한 테이크를 썼다. “제 경우는 녹음 때 앞에 관객이 있는 게 더 편해요.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음악을 더 잘 만들어줘요.”
 
피아니스트 조성진. 사진/Christoph Köstlin, DG
 
다만 조성진은 이번 앨범이 “테크닉적 면보다 슈베르트의 상상력, 구조성, 진보성에 초점을 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1악장, 2악장 중간을 쉬는 보통의 소나타 구조와 달리, 한 악장처럼 연결되는 곡에선 슈베르트의 진보적 마인드를 엿볼 수 있다. 그는 “그러한 상상력에 리스트 역시 이런 작곡법을 도입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가들의 ‘방랑자 환상곡’과 다른 조성진 만의 특별한 점을 묻는 질문엔 “사람의 목소리가 다르듯 건반을 누르는 것도 다르다”며 “어떻게 하면 특별해질까라는 생각보단 그냥 자연스러운 게 가장 개성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뮤지션으로서 조성진의 시계는 푸르른 한낮이다. 슈베르트의 상상력을 마음껏 흡수하는 청년 조성진은 열심히 움직인다. “스물여덟, 스물아홉처럼 ‘ㅂ’자를 붙어야 비로소 이십대 후반이라고 그러더군요. 다음 앨범은 쇼팽이 될 거예요. 앞으로 오케스트라, 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재초청을 받아내는 것, 그게 제 도전이 될 것 같아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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