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그들이 담합하면 좋은 이유

입력 : 2020-04-19 오전 6:00:00
우리는 국제적 담합이 진행되는 걸 눈 뜨고 지켜보면서 그것이 성사되길 바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했다. 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중동 산유국과 러시아 등 OPEC+가 감산 합의에 이르기를 국제사회가 원했다. 감산은 곧 석유가격 인상을 의미하고, 일종의 담합이다. 그래도 석유가격이 폭락하면 실물자산이 몰락하고 세계경제가 붕괴된다. 그것을 막기 위해 사우디와 러시아가, 그 사이 멕시코도 제발 담합하길 바랐다. 몇 고비 넘겨 담합에 성공했지만 결과는 나빴다. 국제유가는 20달러가 깨져 18년 전 최저가로 돌아갔다. 코로나 때문에 자동차가 사라진 세계 도시는 기름 배달도 거부했다. 소비가 무너지는 물가 하락. 디플레이션 공포가 번진다.
 
석유는 세계 각국의 명운을 좌우했다. 이마에 지도가 그려진 추억의 인물, 고르바초프도 석유 때문에 망했다. 땅 속에 석유, 가스를 보유한 소련은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기름값이 추락하자 유럽에 생필품을 빌려야 했다. 결국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을 내려놓으며 소련이 해체됐고 러시아가 파생됐다.
 
역사는 쳇바퀴를 돈다. 초기 러시아는 국가 재건을 위해 석유회사를 민영화했다. 이를 통해 현대화와 산업화를 이루는 듯했다. 하지만 석유 재벌과 마피아 등 부패와 사리사욕으로 오염됐고 그 틈에 집권한 푸틴은 정적이 가진 석유회사(유코스)를 흡수해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 로스네프트를 국유화했다. 석유를 전략 무기로 활용한다는 푸틴의 철학은 확고했다. 러시아는 석유 생산량을 과거 전성기 시절로 되돌렸고 러시아 북극해를 개발하는 등 자원영토를 넓혔다. 그러면서 유럽, 중동 국가들과 충돌했다.
 
그 연장선이 현재다. 어느 한쪽이 많은 이득을 취하면 반드시 분쟁이 생기고 쌍방과 주변이 모두 출혈하게 된다. 과격한 보호주의를 밀어붙였던 트럼프도 석유 앞에 작아졌다. 극단을 피하기 위해 석유 담합 협상 테이블을 적극 중재한 게 트럼프다. 유가가 떨어지면 미국은 새로운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셰일오일 분야에서 무수한 실직자들이 나온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을 가진 미국도 기름값에 무너지는 러시아의 처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기름은 모든 것을 끌어내리는 시커먼 늪이다.
 
전염병이 완화될수록 담합은 효과를 낼 것이다. 유가는 다시 오르게 된다.
 
그럼 지금 우리는 전략적 비축유를 사야 한다. 기름저장탱크를 채울수록 이득이다. 그 탱크를 짓자는 게 동북아오일허브 사업이었다. 그런데 최근 에쓰오일이 사업에 투자했던 지분을 뺐다고 한다. 하겠다고 변죽만 울리다 좋은 때를 다 놓쳤다. 그러니 누가 하고 싶겠나. 오일허브가 빨랐다면 지금쯤 울산 등지에는 거대한 저장탱크들이 묻혀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국가는 지금 돈을 벌 수 있었다. 탱크를 가득 채운 석유는 우리가 쓰던, 되팔던 나중에 다 시세차익을 남겼을 것이다.
 
오르면 내리고, 내리면 오를 수밖에 없는 게 석유사의 이치다. 역사를 수없이 경험했음에도 우리는 조선왕조 임진왜란 전 10만양병설처럼 후회를 반복한다. 멕시코는 유가가 떨어져도 정해진 값에 팔 수 있는 풋옵션을 사뒀다고 한다. 지금은 멕시코가 형님이다.
 
이재영 온라인부장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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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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