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홍 기자] 닛산과 인피니티가 일본 불매운동 후폭풍을 극복하지 못하고 16년만에 한국에서 철수했다. 토요타·렉서스·혼다 등 다른 일본차 업체들도 올해 실적이 반토막나면서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친 위기는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차 브랜드들은 할인 등을 통해 판매회복을 모색하고 있지만 노 재팬(No Japan) 기류가 변하지 않는다면 고전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2004년 한국에 진출한 닛산과 인피니티가 오는 12월 말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다. 스바루(2012년)와 미쓰시비(2013년)가 한국을 떠난 이후 세 번째다. 한국닛산은 올해 영업을 종료해도 기존 고객들을 위한 차량의 품질보증, 부품 관리 등의 애프터세일즈 서비스를 2028년까지 제공할 계획이다.
한국닛산은 “한국 시장에서 사업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지만 대내외적인 사업환경 변화로 인해 국내 시장에서의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면서 “본사는 한국 시장에서 다시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를 갖추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닛산과 인피니티가 결국 한국 철수를 결정했다. 지난해 3월 허성중 한국닛산 대표가 신차를 설명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해 8월, 닛산과 인피니티의 판매가 각각 58대, 57대에 그치면서 위기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한국닛산은 “사업운영을 최적화해야 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사업 파트너사들과 함께 다시 건전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2월 초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철수설이 재점화됐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일본 브랜드들은 하이브리드 기술의 경쟁력 등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작년 1~6월 누적 판매실적을 살펴보면 렉서스는 8372대, 토요타는 6319대로 메르세데스-벤츠, BMW에 이어 수입차 3·4위를 차지했다. 혼다도 5684대로 전년동기 대비 94.4% 증가한 판매량을 보이면서 5위에 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하반기 노 재팬 여파로 일본차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올해 4월까지 누적판매량을 보면 렉서스와 토요타는 1858대, 1654대로 전년동기 대비 67.1%, 54.9% 감소했다. 두 브랜드는 꾸준히 수입차 상위권을 유지해왔지만 올해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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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도 1154대로 68.6%나 급감했으며, 닛산과 인피니티는 813대, 159대로 각각 41.3%, 79.1%나 하락했다. 이 기간 일본 브랜드의 점유율은 7.3%로 전년동기(21.5%)에 비해 14.2%포인트가 줄었다. 반면 독일 브랜드는 52.4%에서 64.9%, 미국 브랜드는 9.4%에서 13.6%로 증가세를 보였다.
토요타와 혼다 관계자들은 “한국시장을 떠날 계획은 전혀 없으며,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토요타는 이달 캠리 하이브리드, 아발론 하이브리드, 프리우스 고객에게 취득세를 전액 지원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렉서스도 지난달 긴급견인 무상서비스 기간을 기존 2년에서 10년으로 연장했다. 혼다도 올해 3월 2020년형 ‘어코드’와 ‘오딧세이’를 출시했다. 아울러 고객 대상으로 ‘사고 견인 지원 서비스’, ‘10만km 고객 지원 서비스’를 상시 운영하면서 신뢰회복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중형·준대형 신차가 등장하면서 일본차 중형 세단의 판매가 위축됐다. 토요타 '캠리 스포츠 에디션' 모습. 사진/토요타코리아
하지만 업계에서는 한·일 갈등이 현재진행형인데다가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신차 라인업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일본 브랜드의 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토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닛산 알티마 등 중형 세단이 일본 브랜드의 판매를 이끌고 있는데, 지난해 출시된 현대자동차 ‘쏘나타’, 기아자동차 ‘K5’ 신형과 현대차 ‘더 뉴 그랜저’ 등이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일본차 판매가 위축되고 있다.
박재용 한국자동차미래연구소 소장은 “코로나19 이슈에도 벤츠, BMW, 폭스바겐 등 독일 브랜드의 국내 판매는 오히려 증가했다”면서 “반면, 일본 브랜드는 정치적 이슈가 해결되지 않으면 국내에서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토요타나 혼다가 당장 한국에서 철수하지는 않겠지만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재홍 기자 maroniev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