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뒤 다 잘린 "그건 해 볼 만 하지"

'부산 녹취록' 전문으로 복기해 본 '2월16일 부산고검 사무실 대화'

입력 : 2020-07-21 오후 7:02:55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검언 유착 의혹' 핵심 피의자인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구속) 측이 21일 공개한 '부산 녹취록'은 지난 2월 이 전 기자와 후배기자 백모씨가 당시 부산고검 차장으로 근무 중이던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을 찾아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녹취록을 보면 기존 언론 보도나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진웅) 수사 상황으로 알려진 바와는 다른 점이 적지 않다. 일부 여당 의원들이 주장해 온 '4월 총선 대비용 여권 인사 압박' 내용 역시 '부산 녹취록'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 전 기자 등은 올해 2월13일, 전국 일선 검사들과의 대화에 나선 윤석열 검찰총장을 따라 취재진 자격으로 부산고검에 방문했다. 이 전 기자가 대화를 주도하고 백씨가 세사람의 대화내용을 녹음했다. '부산 녹취록'은 이 녹음 파일을 문자화 한 것이다. 물론 한 검사장은 녹음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일선 검사들과 간담회를 갖기 위해 지난 2월13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고검·지검을 방문, 간부들과 인사한 이후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녹취록에 따르면, 이 전 기자는 같은 회사 법조팀 후배와 함께 한 검사장과 함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검찰개혁 현안과 법무부와 검찰 관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프로포폴 불법투약 의혹 등에 대해 폭넓게 얘기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인 '신라젠 사건 수사'에 대한 생각들도 나눴다. 전체 대화의 20%쯤 비중을 차지했다. 이 전 기자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이름과 함께 먼저 얘기를 꺼냈지만 한 검사장은 '신라젠 사건의 특성' 등 일반적 얘기에 포커스를 맞추려 했다. 
 
이 전 기자 측은 한 검사장을 상대로 '신라젠-이철-유시민-친정부 인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노력을 끊임 없이 시도했다. 그러나 한 검사장은 이를 감지 했는지 의도적으로 피하는 모습이다. 
 
한 검사장은 "신라젠에 여태까지 수사 했던 것에 플러스 이번에 어떤 부분을 더 이렇게..."라고 이 전 기자가 운을 떼자 "여태까지 수사했던 것에서 제대로 아직 결과는 안 나왔죠?"라며 "전체적으로 봐서 이 수사가 어느 정도 저거는 뭐냐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다중으로 준 거야. 그런 사안 같은 경우는 빨리 정확하게 수사해서 피해 확산을 막을 필요도 있는 거고"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쎈 사람 몇 명이 피해를 입은 것하고, 같은 거라도. 같은 사안에 대해서 1만 명이 100억을 털린 것하고 1명이 100억을 털린 것 하고 보면 1만 명이 100억을 털린 게 훨씬 더 큰 사안이야. 그럼 그거에 대해서는 응분의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한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일선 검사들과 간담회를 갖기 위해 지난 2월13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고검·지검을 방문해 소감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가 뒤따르고 있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등도 윤 총장을 따라 부산고검을 방문했다가 한 검사장과 대화를 나눴다. 사진/뉴시스
 
신라젠 사건의 성격을 한참 설명한 한 검사장이 이내 다른 주제로 방향을 틀었다. 바뀐 주제에 잠시 대꾸를 하던 이 전 기자가 "법무부도 그렇고 기자들도 생각하는 게 사실 신라젠도 서민 다중 피해도 중요하지만 결국 유시민 꼴 보기 싫으니까. 많은 기자들도 유시민 언제 저기 될까. 그 생각을 많이 하는 거잖아요"라며 다시 말을 꺼냈다.
 
한 검사장이 "유시민 씨가 어디서 뭘 했는지 나는 전혀 모르니. 그런 정치인이라든가... 그 사람 정치인도 아닌데 뭐 정치인 수사도 아니고 뭐"라고 말을 돌렸다.
 
이 전 기자가 이번에는 소속사인 채널A를 언급했다. 그는 "결국에는 강연같은 거 한 번 할 때 한 3000만원씩 주고 했을 거 아니에요. 그런 것들을 한 번, 아 옛날에 한번 보니까 웃긴 게 채널A가 그런 영상이, 협찬 영상으로 VIK를…"이라고 했다.
 
대화가 여기까지 왔을 때 한 검사장이 "하여튼 금융 범죄를 정확하게 규명하는 게 중요해. 그게 우선이야"라고 말을 끊었다.
 
대화는 한참을 다른 주제로 풀렸다. 그러나 이 전 기자가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조만간 출국하지 않겠느냐며 다시 얘기를 꺼냈다. 한 검사장이 "관심 없어"라고 재차 끊었다. 이어 "그 사람 밑천 드러난 지 오래됐잖아. 그 1년 전 이맘때쯤과 지금의 유시민의 위상이나 말의 무게를 비교해봐"라고 했다.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꼽히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전 기자 쪽이 더욱 적극적이 됐다. 이 전 기자가 "사실 저희가 요즘 후배기자를 특히 시키는 게...성공률이 낮긴 하지만 그때도 말씀드렸다시피 신라젠 수사는 수사대로 따라가되 너는 유시민만 좀 찾아라…이철 아파트 찾아다니고 그러는데"라고 말했다. 후배 기자도 "시민 수사를 위해서…"라고 거들었다.
 
그러자 한 검사장이 "그건 해 볼 만 하지. 어차피 유시민도 지가 불었잖아. 나올 것 같으니까. 먼저 지가 불기 시작하잖아"라고 말했다. 이 전 기자가 바로 "이철, QOO, ROO. 제가 사실 교도소에 편지도 썼거든요. 당신 어차피 쟤네들이 너 다 버릴 것이고"라고 하자 한 검사장이 "그런 거 하다가 한 건 걸리면 되지"라고 했다. 
 
이 전 기자 쪽이 바짝 "14.5년이면 너(이 전 대표) 출소하면 팔순이다", "가족부터 찾으려고 하고 있다", "(이 전 대표)집을 보니까 옛날에 양주, 의정부 이쪽에다가 막 10개 씩 사고 이랬었는데 지금 다 팔고", "와이프만 찾아도 될 텐데"라고 번갈아 말했다. 문언상으로 보면, 한 검사장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눈치다.
 
여기쯤 왔을 때 한 검사장이 "어디 계신 거예요 지금은? 어디서 진치고 있어야 될 것 아니야"라고 말했다. 윤 총장 취재를 왔으니 윤 총장 주변에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은 것이다. 대화를 끝내겠다는 의미다.
 
한 검사장은 이 전 기자가 "일단 구치소로는 편지를..."이라고 답하자 "아니 지금 말이야. 지금 여기…내가 이제 좀 가야 해서"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측이 21일 공개한 '부산 녹취록' 일부. 자료/주진우 변호사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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