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30년 뒤 내다보고 투자해야""…SK '바이오·배터리' 터 닦은 최종현 회장

26일 최 선대회장 22주기
해외유학·'장학 퀴즈' 지원…인재 육성에도 팔 걷어

입력 : 2020-08-26 오후 2:29:12
[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우리는 사회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며, 기업의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이다."
 
SK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고 현재의 기업 문화 정착에 이바지한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 22주기를 맞았다.
 
26일 SK(034730)에 따르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최 선대회장 22주기는 추모 행사 없이 치른다. 장남인 최태원 SK 회장과 일가 또한 조용히 고인을 기릴 것으로 보인다.
 
최 선대회장은 섬유 사업으로 시작한 SK를 통신, 석유화학, 반도체, 에너지, 바이오 사업을 하는 방대한 그룹사로 키운 인물이다. 아울러 한국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고 현재 그룹을 이끄는 최 회장의 경영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 선대회장이 1981년 초 내한한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담소를 나누는 장면. 최 회장은 2차 석유파동 당시 사우디와 우리나라의 원유공급 문제를 해결했다. 사진/SK
 
석유화학부터 바이오·배터리까지
 
최 선대회장은 "10년 뒤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늘 생각해야 한다"며 "20년, 30년을 내다보고 투자하라"는 경영 방침을 고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뚝심의 첫 성과는 석유화학 사업이다. 1973년 최종건 창업회장에 이어 SK(당시 선경그룹)를 이끌게 된 최 선대회장은 그룹을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첫 과제로 석유사업에 진출했다.
 
사업 초기 1차 석유파동과 2차 석유파동이 일기도 했지만 최 선대회장이 사우디 왕실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한 덕분에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석유화학 사업의 성공은 이후 통신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밑바탕이 된다.
 
통신 사업 진출도 최 선대회장이 정보통신 분야를 그룹의 미래 중점 사업 분야로 정하면서 시작됐다. 최 선대회장은 정보통신 사업의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판단하고 1984년 미주경영기획실 내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했다. 이후 1994년 한국이동통신 지분을 인수하기까지 10년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는 '대통령 사돈 특혜' 의혹에 이미 따낸 이동통신 사업권을 반납하는 아픔도 있었다. 매입을 추진했던 한국이동통신의 주가가 뛰면서 무리한 사업 진출이라는 내부 반대도 있었지만 최 선대회장은 "지금은 2000억원 더 주고 사지만 나중 일을 생각하면 싸게 사는 것"이라며 멈추지 않았고 그렇게 탄생한 SK텔레콤(017670)은 국내 대표 이동통신사로 자리 잡게 된다.
 
올해 주식 시장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바이오 사업도 최 선대회장이 씨를 뿌렸다. 1993년 제약(Pharmaceutical)의 영어 단어 첫음절을 딴 'P 프로젝트'가 그 시작이다. 이후 신약 산업 최전선인 미국 뉴저지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국내 제약사들이 주력하는 복제약은 과감히 버리고 신약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SK바이오팜(326030)은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를 개발했고 지난해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승인도 받을 수 있었다.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최 선대회장의 정신은 지금도 SK 경영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SK는 바이오와 배터리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선정하고 최 선대회장의 말처럼 새로운 10년 후를 준비 중이다.
 
폐암수술을 받은 최 선대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SK
 
인재 육성, 사회적 가치 경영철학으로
 
최 선대회장은 기업은 물론 대한민국을 이끌 인재 육성에도 공을 들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정신은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까지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SK그룹의 현재 경영 철학에도 영향을 줬다.
 
최 선대회장은 1974년 세계적인 학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표로 사재를 출연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장학생을 선발해 해외 유학을 지원해왔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해 기준 3500여명의 장학생이 SK의 도움으로 유학을 할 수 있었다.
 
훗날 최 선대회장은 재단을 설립을 결심하게 된 이유에 대해 "대한민국처럼 자원이 부족하고 인구도 적은 이스라엘이 미국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국가와 사회가 합심해 인적자원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아울러 1974년 MBC 교양 프로그램 '장학퀴즈' 단독 광고주로 나서 장기간 후원하며 청소년 인재 육성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최 선대회장의 인재 보국·산업보국 철학은 아들인 최 회장에 이르러 사회적 가치 경영으로 진화했다. 최 선대회장이 기업의 이윤 창출은 사회의 도움을 받은 결과라고 여겼던 것처럼 경영이 기업의 이익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
 
사회적 가치를 꾸준히 강조하는 최 회장은 지난 6월 열린 SK그룹 '2020 확대경영회의'에서도 "우리가 키워가야 할 기업가치는 단순히 재무성과·배당정책 등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고 말하며 최 선대회장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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