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한화그룹 일감몰아주기를 수년간 파헤치다가 무혐의로 결론 낸 것을 두고 일각에선 비아냥거린다
. 결국 혐의가 없는데 애먼 기업만 괴롭혔다는 식이다
. 그러나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혐의가 없다기보다는 규정 자체가 모호해 혐의를 입증할 근거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 허술한 법 규정 자체의 문제다
.
일감몰아주기를 규탄하는 이유는 재벌그룹 총수일가가 소수 지분만 가지고 기업집단을 소유하면서 개인회사에 일감을 줘 그 회사가 성장한 몫으로 개인 지분 시가를 높이고 이를 지배지분으로 전환, 지배력을 유지하는 편법 때문이다.
따라서 사익편취규제는 이처럼 내부거래가 많은 기업을 타깃으로 한다. 내부거래가 많다는 것은 특정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뜻이다. 그 걸로 이미 공정경쟁을 침해하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안 된다. 현행법은 지원회사에 현저히 유리한 가격조건의 거래 등에 한해 처벌하도록 했다. 그래서 그 ‘현저한’이란 모호함이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
분명한 것은 기업집단 내 지원대상회사는 존재했고 거기엔 총수일가 지분이 있었으며 내부거래를 바탕으로 성장해 지분가치도 급등했다는 점이다. 단지 처벌을 위한 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렵다 뿐이지 규정이 생기게 된 취지를 고려하면 문제는 드러난다. 규정을 고쳐야 할 문제지, 기업에 문제가 없다고 치부할 게 아니다.
최근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에서는 기아차가 패소했다. GM, 쌍용차 판결과 달랐다. 판결을 가른 신의칙 판단 기준 역시 사익편취규제처럼 모호하다. 법관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법이 이리 고무줄스러워도 되나. 법이 정밀하고 세밀한 기준이 없으면 소송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누가 이길지 예상하기 어려우면 사소한 분쟁도 소송으로 번지기 쉽다. 누가 이길지 모르니 일단 소송부터 걸게 된다. 또 기준이 흐리면 평소 법 규정을 지켰는지 판단하기도 애매하다. 그 모호한 틈으로 편법이 스며든다.
재판이 많아서 좋은 건 법조계뿐이지 않을까. 애매한 규정은 법리해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법관이 주관으로 판결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마치 솔로몬이 된 것처럼 법관이 우월해진다.
법이 허술한 것은 애초 국회 탓도 있다. 법이 미비해 고치려고 하면 각 정당의 이해관계가 얽혀 개정안은 만신창이가 된다.
최근 수해를 두고도 태양광이 산사태의 주범이니, 사대강이 홍수를 막았다느니, 혹은 홍수를 더 일으킨다느니, 여야가 서로 상대측 인재(人災)를 주장한다. 양쪽 주장엔 상대편은 틀리고 내가 맞는다는 고집만 있다. 서로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절충해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드물다. 헤겔은 변증법을 주창했고 고대 소크라테스는 문답법을 내세웠다. 동양에도 중용이란 고전 철학이 있다. 이들 모든 삶의 진리에 대한 탐구는 처음부터 정답은 없다는 점이 일치한다.
그러나 국회에선 조금의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않고 실수와 꼬투리 잡기에 혈안이다. 서로 흠집내기에 집중하다보니 상대 말은 받아들이지 않고 내 말만 관철한다. 국회에 정상적인 토론이 없으니 최선의 답도 도출되기 어렵다.
21대 국회가 거대 여당의 힘으로 법안 통과 확률은 높아졌지만 새로 발의된 상법과 공정거래법은 의외로 기세가 약하다. 본래 개정 취지보다 반대여론 부담을 낮춰 통과에 의미를 두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힘이 없다. 통과돼 봤자 모호한 틈새가 또 하나 생길 뿐이다.
이재영 온라인부장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