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원격의료는 말도 못 꺼내는 디지털 강국

입력 : 2020-09-07 오전 6:00:00
의료 파업 사태를 보면서 낮은 곳에 달린 열매는 다 따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쉽게 성과를 내는 시대는 지났고 우리 앞에는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만 남아 있는 것 같다. 좋은 의도도 입장에 따라서는 다르게 보이고 이해관계가 걸리면 의도치 못한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의료 파업이 보여주었다. 부동산 정책도 그렇고 이제 단편적인 정책은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누구도 장담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 사회 곳곳에 검은 코끼리가 자리잡고 있고, 웬만해서는 꿈쩍도 안하고 자기 몸집이 얼마나 큰지도 모르고 방안을 전부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또 다시 의료계가 보여주었다. 
 
정부(정당, 정치권)와 의료계 모두 미래의 의료와 국민 건강을 위한다고 하지만, 정책의 효과에 대하여 인식이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의료 수요가 증가하고 지방의 경우 의료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은 모두가 인지하고 동의하는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하나하나 다르게 해석되고 다른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서로 대립한다. 
 
정부는 의료 공급을 늘리는 측면에서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 제도, 지역 공공병원 확대 등을 추진했지만 의료계는 질 낮은 의사의 양산으로 의료의 질이 낮아지고 수도권의 의료 과잉으로 귀결되어 결과적으로 전체 의료 비용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반대한다. 더불어 한방 첩약의 급여화와 원격의료 반대라는 이슈가 추가되었다. 의사들의 지역 근무와 특정 진료과 기피 문제는 의료 수가와 보상 확대로 해결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하나의 이슈를 꺼내면 열 가지 문제가 줄줄이 끌려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정부와 정치권의 공공의대 설립 추진은 2015년 박근혜 정부때부터 시작되었지만 의협 등 의료계는 코로나19 상황에서 현 정부가 졸속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한 파업이라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의료 확대가 질 낮은 의료인만 양성할 뿐이라는 의료계의 비판은 '엘리트주의에 갇힌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다행히 정부와 정치권이 의협과 파업을 풀고 공공의대 신설, 의대정원 확대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이제 의료 문제는 전 국민의 문제가 되었다. 정치권과 의료계가 협의할 문제가 아니라 의료 소비자인 국민도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 의료계와 정부가 적당히 합의하기에는 의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국민도 알게 되었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합의의 장에 초대되어야 한다.
 
먼저 논의해야 할 것은 의료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라고 본다. 효율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이 나오고 이후 인력과 예산 문제가 논의되야 할 것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의료 시스템의 효율화가 먼저 추진돼야 한다. 그리고 의료 소비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검토되야 한다. 우선 국민(환자)의 의료 정보권을 보장해야 한다. 스마트워치에서 심전도 검사가 가능한데 막는 것은 개인의 건강(의료) 정보에 대한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다. 심전도는 '전교 1등' 의사만 이해할 수 있는 정보인가? 다양한 디바이스의 개발로 정보 습득이 쉬워지고 싸지는데 의료계는 여전히 폐쇄된 영역으로 남아 있다. 언제까지 종이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가야 하나? 핀란드는 이미 어느 약국에서나 온라인으로 처방전을 확인해서 약을 내주고 있다. 공적 마스크 판매에서 확인했듯이 이미 온라인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다. 만성질환 환자가 매번 병원을 방문해야 하나? 고령 환자가 계속 증가할 것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는데 의사가 다른 병원에서의 처방 내용을 모르고 다른 약과의 동시 복용으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깜깜이 처방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초고속 인터넷이 깔려 있는데 여전히 종이 시대의 의료가 지속돼야 하나? 
 
투명해지면 부작용이 개선될 수 있다. 디지털 의료를 원격의료의 다른 이름이라고 반대한다면 이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국민들은 의료계가 디지털 기술을 더 활용해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건강을 지켜 주길 바란다.
 
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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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