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 반년…경찰 '고구마 수사'에 피해자들 지친다

고소·고발 접수 기관 혼란 여전
접수 후에도 진행상황 몰라 답답
변호사들 "경찰 수사능력 한계"
경찰 "사건 과중, 인력 보강 시급"

입력 : 2021-07-04 오후 12:00:00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 지난달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에 살던 스무살 청년이 34kg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가족이 지난해 10월쯤 가해자들을 상해죄로 고소했지만 경찰은 지난 5월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관할 문제로 사건을 이송하며 7개월간 시간만 끌었을 뿐 경찰은 결국 혐의없음(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경찰의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동안 그는 친구들에게 지속적으로 감금·폭행 등을 당하다 끝내 숨졌다.
 
‘검경 수사권 조정’ 내용을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반년이 넘었다. 고소인과 변호인들은 경찰서에서 고소장 자체를 받지 않거나 시간만 끌다 사건을 종결 처리한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경찰서 내부에선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최근에는 주식, 코인 등 각종 사기 사건이 급증하면서 경찰 경제팀에 상당 업무가 몰리고 있다.
 
정부가 검경 수사권을 조정해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쪼갠 근본적 배경은 수사기관 문턱을 낮춰 국민에게 질 좋은 수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었으나 취지와 달리 현장에선 혼선만 빚어지는 모습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들이 또 감당하고 있다.
 
고소·고발장 제출 단계부터 혼란
 
우선 피해자들은 고소·고발장을 제출하는 단계부터 혼란을 겪고 있다. 기존에는 주로 검찰청에 고소·고발장을 제출했으나 올해부터는 6대 범죄(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를 제외한 일반 형사 사건은 반드시 경찰서에 내야 한다.
 
검찰에 고소·고발장을 제출했다 반려되는 사례가 빈번하고, 경찰에 고소·고발장을 접수하더라도 수개월의 시일이 지나 불송치 결정이 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2021년 1~4월 전체 사건 대비 내사종결 및 미제편철 사건 수 비율. 제공/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4월 경찰에 접수된 사건 51만8905건 중 9만1130건이 내사 종결(17.6%), 4만2324건이 미제편철(8.2%) 처분됐다. 동기대비 통계는 집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적지 않은 수치다.
 
미제 편철은 경찰이 수사 실마리를 찾지 못해 사건을 공소시효 만료까지 잠정 종결하는 것을 말한다. 내사는 수사 이전에 이뤄지는 경찰 자체 조사활동으로 따로 사건번호가 부여되지 않는다. 검찰에 알릴 의무도 없다보니 내사 중 사건 당사자는 진행 상황을 알 수 없다.
 
경찰은 외부 감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내사에 따른 미제, 불기소 처리를 막기 위해 3중 내부 심사체계(수사심사관, 지방청 책임수사심의계, 외부 감사)를 구축했으나 수사권 조정 이후 내사 종결, 미제 처분 비중이 더 늘어난 셈이다. 
 
경찰은 이처럼 사건 내사 후 혐의점이 없다고 판단하면 사건을 자체 종결할 수 있다. 지난해까지는 경찰의 판단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건이 검사의 기소·불기소에 따라 결정됐지만 올해부터는 경찰이 기소 사건만 검사에게 송치하고, 불기소 사건은 넘기지 않는다.
 
고소·고발인이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검찰에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 이의신청이 제기되면 경찰은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하고, 이때부터는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 책임이 검사에게 이전된다. 검사는 사건을 검토해 경찰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한 번 시간이 걸린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이 사건을 경찰로 이첩하거나 경찰 내사로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지 않는 등의 경우 당사자는 사건 처리 과정을 알 수 없다. 형사사법포털(KICS)에서 사건 검색도 되지 않는다.
 
지난해까지는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 지휘를 하고 사건 기록 일체를 경찰에 보내더라도 사건이 검찰에 접수된 상태이므로 사건 조회가 가능했으나 지금은 당사자들이 본인 사건조차 조회할 수 없는 것이다.
 
검사가 경찰 측에 보완수사를 요구해 검찰에 접수됐던 사건이 다시 경찰 사건이 되면 사건번호가 없어지기도 한다.
 
검경수사권 조정 후 2021년 1월 한달 간 경찰의 사건 처리 현황, 제공/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실

사건 당사자 변호인들은 바뀐 형사 절차 시스템으로 사건 진행이 종전보다 더 답답하게 흘러간다는 반응이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4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피의자뿐 아니라 고소인, 참고인 측 변호인으로 수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라 할 수 있다”면서도 “수사 진행이 너무 늦어지고, 이 과정 때문에 형사사법포털에서 검색이 안 되거나 사건 진행 상황을 바로 알 수 없다 보니 고소인들 입장에선 굉장히 불안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형사 전문 변호사도 “요즘 코인 등 사기 사건으로 집단 소송자는 급증하는데 사건 진행이 너무 느리다”며 “소통 면에선 검사보다는 경찰 수사관들이 좀 더 수월한 면은 있지만 불송치 결정문 등을 받아 보면 솔직히 수사 능력에는 한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찰 수사관들도 사건이 너무 몰리니까 수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며 “그러다 보니 피의자나 피해자 사생활 보호도 취약한 상태”라고 우려했다.
 
이같은 현상은 통계를 통해 이미 지적된 바 있다. 대검찰청이 지난 4월22일 발표한 ‘2021년 1분기(1월~3월) 개정 형사법령 운영 현황’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1∼3월) 경찰이 검찰로 송치·송부한 사건은 22만7241건으로 전년 동기(29만874건) 대비 21.9% 줄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대검 발표 당일 개정법 시행에 대한 수사실무의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며 반박자료를 냈다. 전체 사건 접수 건 수를 근거로 접수 사건 총량이 줄었다고도 해명했다. 국수본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접수 사건 수는 51만7988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접수된 56만3327건에 비해 7.9% 적었다.
 
일선 경찰 "업무 과중…수사 인력 보완 시급"
 
“죽겠다. 불송치 등 (혐의없음) 사건 처리하고 작성할게 많다 보니 행정 업무가 너무 몰려 사무실에 아예 고속 복사기를 들여놨다. 요즘 사기사건이 많아서 경제팀은 더 괴롭다고 들었다.”
 
한 서울 소재 경찰서 수사관의 하소연이다. 경찰 내부에 업무 과중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고소인과 변호인뿐 아니라 경찰도 혼란을 겪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경찰에 업무가 몰리면서 오히려 검찰이 편해진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선 추후 사건이 몰려올 것을 예상해 이를 대비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결국 ‘조삼모사’라는 주장이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변호인의 수사참여권 등이 강화된 것은 긍정적이나 수사 속도가 너무 느려 경찰 내부 인력 보완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과도기를 거치는 상황이라 형사사법 체계가 안착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행사한 뒤 검찰이 사건 기록을 검토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이 90일이다. 검경은 수사권 조정 이후 사건 처리 현황을 3개월 단위로 집계 중으로, 이달 중 2분기 관련 통계를 집계해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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