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오징어게임'이 국제적으로 그야말로 난리다. 소재로 사용된 한국 놀이도 인기다. 코흘리개 시절 또래들끼리 동네 골목에서나 하던 소박한 우리 놀이에 범 지구적으로 열광해준다니 이것 참 쑥스러우면서도 감개무량하다.
80년대 아이들 놀거리래야 봤자 뭐가 있었겠느냐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얼른 생각해봐도 15가지가 넘는다. 대부분 고도의 전술·전략을 요소로 하는 '익스트림 스포츠'다.
그중에서도 숨바꼭질은 딱 어린애 손바닥만 한 동네에서 하기 더없이 좋은 놀이였다. 그 시절 기자를 비롯해 주 멤버였던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은 점심이든 저녁이든, 모였다 하면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나도록 노느라 날 저무는 줄 몰랐다.
숨바꼭질에서 숨어 있는 동무들을 찾는 사람을 '술래'라 한다. 그러나 기자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이 단어를 몰랐다. 서울로 전학 와서야 '술래'라고 부르길래 그런 줄 알았다. 전학 전 우리 동네 강원도 인제에서 '술래' 대신 부른 이름은 '오니'였다.
'오니'와 '술래'의 정체성 혼동으로 큰 충격을 받은 어릴 적 기자는 무려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을 펴 들고 '오니'를 열심히 찾아봤으나 적혀 있지 않았다. 발음이 비슷한 '온이', '온희', '오늬'도 찾아봤으나 술래를 의미하는 단어는 결국 찾지 못했다. 물론 인터넷이 없었던 때였다.
'오니'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된 때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뒤였다. 196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 '오니바바(鬼婆, Onibaba)'를 우연히 보면서다. 말 그대로 '오니'는 귀신을 이르는 한자 '鬼'의 일본식 발음이다. 일본에서 술래잡기를 '오니곳코'라고 한다는 사실 역시 얼마 지나지 알게 됐다.
'오니'가 우리의 술래로 둔갑한 때는 필시 일제 치하였으리라. 우리말 술래의 어원은 순라(조선시대 궁중과 장안을 순찰하던 군졸)라고 한다. 못내 그리운 어린 날, 우리는 일본 귀신을 피해 숨고 달렸던 셈이다. 지금까지도 뒷맛이 씁쓸하고 오싹하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는 '깐부'라는 별칭이 나온다. 간단히 말해 친구끼리 맺은 구슬치기·딱지치기 동맹이다. 이 또한 우리말에는 어원이 없다. 국립국어원에서도 모른다. 지난 9월 한 국민이 올린 질의에 '표준 국어 대사전과 우리말샘 등을 두루 찾아보았지만, '깐부'라는 표현에 대해 답변할만한 쓰임을 찾지 못했다'고 답했을 뿐이다.
학자나 전문가들에 따라 '깐부'의 어원을 두고 여러 가설이 나온다. 영어의 '콤보(combo)'나 피부가 검은 친구를 정겹게 이르는 '깜보'가 어원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가장 그럴듯한 접근은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의 사귐. 즉 영원히 변치 않는 참된 우정) 중 '관포(管鮑)'의 일본 또는 중국식 발음이라는 가설이다.
일본에서는 관중과 포숙과 같은 친한 사람을 관포라고도 표현하며 이때 발음은 '간포'다. 중국어 어원설도 있다. 역시 같은 의미로, '꽌바오'라고 발음한다.
또래들끼리 동질감을 확인하기 위해 쓰는 은어들은 대부분 발음이 세고 격하며 강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일본어 '간포'의 첫 음절이 센 소리 '깐'으로, 포가 발음이 쉬운 '부'로 변했다는 것이 보다 설득력 있어 보인다. 여러 일본어 학자도 그런 냄새가 강하게 난다고 했다.
반면 중국식 발음 '꽌바오'의 경우, 경험칙상으로 '꽌-'이라는 발음이 우리에게 익숙치 않다는 점, 뒤에 이어지는 '-바오'라는 두음절 발음이 한 음절 '-부'로 변환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있다.
그 시절 '깐부'는 우리들 서로에게 친구 이상으로 참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를 부르는 그 정겨운 이름이 알고보니 일제의 잔재였을지도 모른다는 이 감상은 '오니'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일본이든 중국이든 K콘텐츠의 성공을 시기하는 이들이 '깐부'를 앞세워 딴지를 걸거나 한 다리 걸치려 용을 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과연 단순한 노파심일까.
최기철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