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박효선 기자] "산업지형이 급속히 바뀌고 있어요. 로펌들이 선제적으로 나서 4차 산업시대 선도를 준비해야 합니다."
문무일 법무법인(유) 세종 신임 대표의 눈빛은 거침이 없었다. 기자가 3년 전 만났던 검찰총장 시절의 그와는 또다른 눈빛이었다. 세종 신임 대표로서의 비전에 대한 질문이었으나 돌아온 그의 답에는 한국 로펌의 미래 방향에 대한 제언이 담겨 있었다. 세종 대표로 취임한 지 불과 열흘이 조금 넘었지만 여유와 노련미가 엿보이는 완전한 로펌 대표로 보였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디타워에 위치한 세종 서울 본사에서 만난 문 대표는,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똑같은 열정으로 로펌 대표로서의 각오와 비전을 쏟아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누구나 4차산업을 말 하지만 누구도 명확히 정리하지 못하는 것이 4차산업이다. 그러나 문 대표가 이야기하는 4차산업, 적어도 로펌을 비롯한 변호사 업계가 주목해야 하는 4차산업 시대에서의 로펌, 즉 법률가의 과제는 명확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디타워에 있는 세종 본사에서 <뉴스토마토>와 안터뷰하고 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4차산업의 핵심은 데이터"
"4차산업의 핵심은 데이터입니다. AI를 많이들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엔진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은 결국 데이터 산업시대로 간다는 것입니다. 산업지형이 완전히 바뀌는 거예요. 우리 로펌들도 그에 따라 선제적 준비를 해야 합니다."
4차 산업시대의 성패와 지속 가능성은, 천문학적으로 산재해 있는 여러 데이터를 어떻게 통제·관리·개발·활용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는 말로 이해됐다. 의뢰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률서비스의 방점도 여기에 찍혀야 한다는 게 문 대표의 말이다. 여기에서의 데이터는 디지털화 된 데이터다.
그러나 일반 기업에서는 이 데이터를 다룰만 한 시스템이 아직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국가기관 중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워낙 전문적인 분야인 데다가 그 양 또한 방대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술은 현재 기업의 범죄를 수사하는 수사기관에게 집중돼 있다. 그 중에서도 검찰이 가진 기술이 독보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바로 디지털포렌식 기술이다.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의 산파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문 대표다.
디지털포렌식 기술 도입 처음으로 주창
문 대표는 2006년 6월29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정보보호심포지엄'에서 디지털포렌식 수사기술 도입을 처음으로 공식 주창했다. 대검 과학수사 제2담당관 시절이었다. 그때만 해도 디지털 증거분석에 사용되는 수사장비와 소프트웨어 시장은 말 그대로 미국판이었다. 과학수사에 엄청난 제한과 장애가 있음은 당연했다.
이 보다 한 해 앞서서는 기획예산처로부터 당시 대검이 건립 중이던 디지털증거자료분석센터(현 NDFC) 예산을 따내면서 검찰 과학수사의 불씨를 살려냈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내세워 필요성에 의문을 던졌지만, 이 때 받은 예산이 뒷받침 돼 대검 NDFC 창립이 현실화 됐다. 동시에 국과수와 NDFC의 경쟁체제로 구도가 바뀌면서 한국의 과학수사 수준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회계분석 수사시스템 처음 도입
회계분석 수사시스템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도 문 대표다. 2004년 대검 중앙수사부 특별수사지원과장 때의 일이다. 결국, 디지털포렌식 기술과 함께 특별수사 양대 엔진의 기틀을 문 대표가 닦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디타워에 있는 세종 본사에서 <뉴스토마토>와 안터뷰하고 있다. 사진=박효선 기자
30년 동안 검사로 재직하면서 '특별수사·디지털과학수사'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문 대표는 검찰총장을 끝으로 퇴임하면서 본격적인 4차산업과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2019년 11월 모교인 고려대학교에서 일하게 된 것이 우연치 않은 기회였다. 고대에서 문 대표는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아닌 정보대학 컴퓨터학과 석좌교수로 취임했다. 검찰총장 임기 2년을 꽉 채우고 떠난 지 석달 뒤의 일이었다.
조지타운대에서 '4차 산업혁명과 법윤리' 연구
이 보다 한달쯤 앞서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 D.C.에 있는 조지타운대 비지팅 스콜라(객원연구원) 과정을 밟았다. 이때 연구한 것이 '4차 산업혁명과 법윤리'다. 1년여간의 연구과정을 끝내고 고대로 돌아와서는 역시 같은 테마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4차 산업혁명과 법, 그리고 법률가들이 바라봐야 할 방향을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법률서비스의 주체인 로펌, 즉 법률가로서의 과제는 무엇일까. 문 대표의 답이 바로 되돌아왔다.
"산업지형이 바뀌는 데 따라서 국가 규제 방식이 바뀝니다. 국가라는 게 규제 중심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국가와 산업 사이에서 또 산업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조언하고 분쟁을 해결해야하는 것이 로펌의 일입니다. 산업지형이 변하면 앞서든 따르든 로펌도 같이 가야 합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디타워에 있는 세종 본사에서 <뉴스토마토>와 안터뷰하고 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로펌, 체질부터 바꿔야"
문 대표는 로펌이 그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체질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재 영입은 물론 로펌의 업무분장 체계도 그에 맞게 혁신해야 한다"면서 "로펌 스스로도 나름대로 4차 산업의 비전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했다.
문 대표가 여러 유수한 로펌들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세종으로 간 이유도 이런 신념이 통해서다. 세종 역시 4차 산업혁명과 로펌의 길을 일찌감치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5~6년 전부터 기업자문이나 송무, 금융, 기업형사 등 '전통적인 로펌 업무'에 더해 △디지털기술·데이터법 △방송통신(TMT) △메타버스+NFT △가상자산 등 4차산업 분야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했다.
세종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해 4월 세종의 경영대표(업무집행 변호사, Managint Partner)를 맡고 있는 오종한 대표 취임 후 가속화 됐다.
문 대표와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이기도 한 오 대표는 대내외적으로 “코로나19 발생 이후 급속도로 디지털 경제가 확산되면서 산업구조 개편이 이미 시작됐다. 산업 재편과 변화에 따른 로펌 차원의 신속하고 유연한 대응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새로운 산업에 적용될 규제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의미와 시사점을 정확히 분석·예측해 고객들에게 선제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여러번 강조한 바 있다.
문 대표 합류로 당장 탄력을 받는 것은 세종의 형사그룹과 세종디지털포렌식센터이겠지만 조세·금융증권·중대재해 대응 분야를 비롯한 로펌 업무 전반에 상당한 시너지가 있을 전망이다. 전통적인 법률서비스 부분이면서도 최근 사건의 특성사유 모두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디타워에 있는 세종 본사에서 <뉴스토마토>와 안터뷰하고 있다. 사진=박효선 기자
"'수사 대응팀' 딱지 떼내야"
문 대표는 로펌 업무분야도 장기적으로 특정 분야의 ‘수사 대응’ 딱지를 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금융증권 수사대응팀’이 아닌 ‘금융증권 대응팀’인 식이다. 기존과 같이 국가의 수사나 기업간 분쟁에서 의뢰인의 요청을 받아 수동적으로 방어에 나서는 선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국가 규제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분석·예측해 선제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의뢰인의 권익보호와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주는 역할을 로펌이 맡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같은 맥락에서 퇴임 후 공을 들여 설립한 '투명경영연구소'는 문 대표가 나름대로 가꿔 온 4차산업 경쟁력이다. 기업 자문 업무에 검찰 특별수사 중 회계분석수사 기법을 도입한 독특한 방식의 컨설팅 조직이다. 자금 흐름을 시기별로 분석해 위법사항을 찾아낸 뒤 '업무상 횡령', '업무상 배임' 등 범죄군으로 묶어 기업 소유자나 경영자에게 경고하는 일을 하고 있다. 회계분석·디지털포렌식 전문가 8명이 참여 중이다.
문 대표는 투명경영연구소를 소개하며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틀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밝힌 세종대표로서의 각오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다만, 세종 대표로 취임하면서 '투명경영연구소' 일은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일을 하지 않으니 급여도 받지 않고 있다. 그것이 세종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최기철·박효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