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그린벨트 지역인 서울 강남구 세곡동·서초구 내곡동 일대 토지 42.1%가 민간 소유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정부가 8·8 부동산 대책을 통해 서울과 수도권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주택 8만호를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투기만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겁니다. 실제로 8·8 대책 이후 해제 대상지로 떠오른 그린벨트 지역에선 토지거래가 늘고, 지분쪼개기가 성행한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30일 발표한 ‘그린벨트 토지소유주 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그린벨트 유력 후보지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세곡동·서초구 내곡동 일대 토지는 총 4252필지 985만㎡(약 300만평)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민간 소유는 42.1%(약 113만평)나 됩니다. 강남구 세곡동과 서초구 내곡동은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로 불립니다. 강남권에 있다 보니 그린벨트 해제 소식이 들릴 때마다 땅값이 요동치곤 합니다.
경실련에 따르면, 세곡·내곡동 토지 중 공시지가와 면적이 없는 95필지를 제외한 4157필지의 현재 공시지가 총액은 4조1761억원입니다. 개인과 법인을 포함한 민간 소유는 1조2307억원으로, 전체 공시지가의 30%를 차지했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가 30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그린벨트 토지소유주 현황 분석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토지이용 실태조사로 투기 막아야”
경실련은 이 지역 그린벨트 거래 내역에선 지분쪼개기 거래가 의심된다고 했습니다. 2020년부터 지난 10월까지 세곡동·내곡동 토지 거래 건수는 169건인데, 지분 매매는 최근 5년간 총 80건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그린벨트 거래의 47.3%였습니다. 절반 가까이가 지분쪼개기 형식으로 팔렸다는 뜻입니다. 특히 지난해에만 지분 거래가 23건 이뤄졌습니다. 그린벨트 해제 이슈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경실련 설명입니다.
지분쪼개기는 기획 부동산의 전형적인 사기 수법으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특정 업체가 그린벨트나 개발가치가 낮은 산지 등을 사들인 후에 웃돈을 얹어 지분을 분할 판매하는 식입니다. 개발 예정지의 지분을 갖고 분양권 등을 얻을 수 있어 개발 직전의 지분 매매는 투기 목적이 크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윤은주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부장은 “조사 과정에서 투기로 의심되는 정황들이 많이 발견됐지만, 모두 투기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며 “다만 정부에서 토지가 용도에 맞게 사용되는지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토지이용 실태조사를 상시로 진행해 투기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최상목 경제부총리(왼쪽 세번째부터), 오세훈 서울시장,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및 참석자들이 지난 8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린벨트 해제가 이뤄지면 반사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발생하면서 사익 추구에 이용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입니다. 과거 서울의 마곡과 위례, 경기도의 판교와 과천 등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 공급도 집값 안정화 효과는 없이 부동산 투기 등의 부작용만 더 키웠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때문에 경실련은 집값 안정화를 위해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을 공급하는 건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린벨트 해제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는 겁니다.
황지욱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운영위원장은 “집값 상승 때문에 그린벨트를 대규모로 풀어서 택지를 조성하고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논리는 실질적 문제해결과는 관계가 없다”면서 “실제 주택 공급까지는 6~7년 이후에나 가능해서 집값 안정화보다 투기 부작용만 생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지금도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사회경제적 비용이 엄청난데 수도권에 그린벨트가 풀리면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마저 저해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