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지 않다." 이런 말, 주변에서 한 번쯤 들어보거나 본인이 입 밖으로 내뱉은 적 있지 않으신가요? 대한민국은 현재 출산과 육아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집값은 급격히 올라 도시에 '내 집 마련'을 꿈꾸기가 어려워졌고, 건실한 직장 취직도 하늘의 별 따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합을 맞춰야 하는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보다 혼자가 낫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죠. 그런데 정부는 계속 애를 낳으라고 합니다. 지금의 출산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출산율 높여라 '안간힘'
지난 주말 대통령실은 출산율 제고를 위한 신규 정책과제를 발표했습니다. 일·가정 양립 우수 중소기업이 세무조사 유예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임신 초기 유·사산 휴가를 5일에서 10일로 확대하는 동시에 배우자의 유·사산 휴가 제도를 신설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또한 난임 가정 의료비 지원을 확대하고, 육아휴직 대신 육아몰입기간, 경력단절여성 대신 경력보유여성 등 용어 변경을 통해 사회적 인식도 개선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지자체도 팔 걷었다 : 지방자치단체도 저출생 위기 극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오는 2026년까지 '탄생응원 서울 프로젝트' 시즌2에 6조7000억원을 투입한다고 29일 밝혔는데요. 2022년 발표한 '엄마아빠 행복 프로젝트'의 확장판 개념입니다.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장기전세주택을 공급하고, 아이가 태어나는 무주택가구에 주거비를 지원하는 방식의 주거대책이 포함됐습니다. 신혼부부 살림 비용을 지원하고, 필수 육아용품을 최대 반값에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양육자와 예비양육자의 삶을 바꾸는 정책도 추진합니다.
부영, '출산장려금 1억원'
정부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기업들도 이에 응답했습니다. 그 중에서 파격적인 출산 장려금으로 화제가 된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부영그룹인데요.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올해 초 아이를 낳은 직원에게 자녀 한 명당 1억원의 출산 장려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해 큰 관심과 호응을 얻었습니다. 부영그룹은 지난 8월까지 총 70억원의 출산 장려금을 지급했습니다. 이후 쌍방울그룹이 5년 이상 근속자에게 수천만원의 출산 장려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롯데그룹은 셋째를 출산한 전 계열사 임직원에게 카니발 승합차 2년 렌트비 지원을 공언했습니다.
역대 최저 합계출산율
정부와 기업이 이처럼 출산과 육아 지원책에 팔을 걷고 나선 이유는 낮은 출산율로 인한 사회 변화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전년 대비 0.06명 감소한 0.72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역대 최저 기록입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합니다. 통계청은 총인구가 2024년 5175만명에서 2030년 5131만명, 2072년 3622만명으로 감소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습니다.
-인구 소멸, 위기감 고조 : 이렇다 보니 인구 소멸 위기론까지 대두되고 있죠. 인구 변화는 경제, 사회 등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국가 경쟁력과도 연결됩니다. 생산가능 인구 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해지면 경제 성장도 정체됩니다. 내수 기반이 약해져 산업 확대를 기대하기도 어렵죠. 적은 인구로는 사회 안전망 비용을 감당하기도 힘들어집니다. 초고령화로 청년 세대의 부양 부담도 더욱 커지게 됩니다. 실제 우리나라 생산연령인구는 2022년 3674만명에서 2072년 1658만명으로 50년 후 반토막 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 세계, 한국에 우려 : 유례없이 낮은 한국의 합계출산율에 세계 곳곳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에서 "현재 출산율 기준, 한국 인구는 지금의 3분의 1보다 훨씬 적어질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세계 인구 붕괴를 심각한 위협으로 꼽은 그는 "사람을 만들지 못하면 더는 인류도 없을 것이고, 다른 모든 정책도 무의미해진다"고 경고했습니다. 미국 CNN 방송은 "세계 최저 출산을 기록 중인 한국이 충분한 군인 수를 유지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며 저출생으로 인한 국방력 약화를 지적했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국가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왜 안 낳는가?
아이를 낳지 않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경제적 문제가 가장 큽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올 3월 발행한 '제1차 국민인구행태조사'를 보면, 가임기 인구(20~44세)의 자녀에 대한 가치관 중 △'자녀는 성장기에 비용이 많이 든다'에 동의하는 비율이 96%로 높게 집계됐습니다. 다음으로 △'자녀들이 겪게 될 미래가 걱정된다' 88.8% △'자녀는 여성의 경력에 제약이 된다' 77.6% △'자녀는 부모의 자유에 제약을 준다' 72.8% 순이었습니다.
-무엇이 필요한가? : 그렇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요?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전국 만 25~49세 일반국민 2592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요. 저출생 해결을 위한 분야별 중요도를 묻는 질문에 △일·가정양립 지원(85.7%) △양육 지원(85.6%) △주거 등 결혼·출산 지원(84.1%)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양육비를 위해 일을 지속해야 하고, 이를 위해 일을 하면서 아이와 가정을 함께 돌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마지막 기회 10년
전문가들은 향후 10년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10년 후에는 임신 가능한 여성 인구 수가 현저히 줄기 때문에 합계출산율이 증가한다고 해도 드라마틱한 인구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늦게나마 저출산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미래를 위해 모두 노력한다면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기간입니다. 정부의 치밀한 정책 마련과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으로 위기를 잘 헤쳐나가야 할 때입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