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유지웅 기자] 2022년 6·1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개입 정황을 뒷받침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육성이 공개되면서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국민의힘은 당선인 신분이었을 때의 통화 내용임을 강조하며 '공천개입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에서는 '탄핵의 시간이 가까워졌다'면서 대통령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등이 31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녹취 파일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육성 공개에도…국힘 "당선인 신분, 공천개입 아냐"
민주당이 31일 오전 윤 대통령과 명태균 씨 사이의 통화 육성을 공개한 직후 여야 정치권은 일제히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예기치 않은 일격을 당한 국민의힘은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상황 파악을 해봐야 한다"고 말을 아꼈는데요.
이후 "당시 윤 당선인과 명태균 씨가 통화한 내용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대통령실 반응이 나오면서는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받은 전화라는 점을 집중 부각하며 방어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친윤(친윤석열)계 정치인으로 꼽히는 권성동 의원은 이날 오전 추경호 원내대표 주재 중진 의원 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당의 1호 당원인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치적인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걸 가지고 선거 개입이니, 공직선거법상 선거 관여죄니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너무 나간 주장"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천개입이라 보지 않는다"라고 단언했는데요. 그 역시 "(대통령) 취임식 하루 전날이라 무수히 많은 사람과 통화를 했었다. 명 씨와의 대화도 사실 기억에 없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적인 신분에서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사적 대화의 일환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본다"고 부연했습니다.
다만 친한(친한동훈)계 최다선 의원으로 분류되는 조경태 의원은 "검찰에서 수사 중에 있으니 수사를 좀 철저하게 해서 진실 규명을 해야 한다"며 "당무감사를 착수하는 것이 올바르다"라고 다소 결이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녹취 추가 공개 예정"…탄핵·하야 주장도 고개
정부·여당의 옹색한 해명에 범야권은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언으로만 알려졌던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추가로 입수되는 파일들도 계속 공개하겠다는 계획인데요.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공익제보센터 설치한 이후로 상당하나 제보들이 접수되고 있다"며 "사실 확 절차를 거치고 국민과 언론에 공개할 만한 것이 있다 보면 말씀드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서는 거대 야당인 민주당과 소수 정당 간의 온도차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민들께서 어떻게 보시는지 여론을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다. 사안의 경중은 본질 속에 담겨있는 것이기에 있는 그대로 평가해달라"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조국혁신당과 기본소득당 등 소수 정당은 탄핵과 하야를 직접 거론하며 윤 대통령을 압박했습니다. 조국혁신당 탄핵추진위원회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천 개입은 결국 사실이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하야하라"고 촉구했습니다. 탄추위는 "윤 대통령은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할 동력을 상실했다. 오는 11월4일 국회에서 진행할 시정연설은 예산안이 아닌 자진 사퇴에 대한 입장 발표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윤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하지 않을 경우 답은 탄핵밖에 없다"고도 했습니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은 "통화는 (취임 전인) 5월9일에 했더라도 공천은 (취임식 이후인) 10일에 발표됐기 때문에 대통령 신분에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공천개입이 분명하다"고 주장했고요. 같은 당 신장식 의원은 "(대통령실의) 해답을 국민들이 믿을 것이라 보나"라며 "아무말 대잔치를 시작했다. 당황했다는 증거"라고 전했습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역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 탄핵의 사유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이제 넘칠 지경이다"라며 "탄핵된 두 번째 대통령이 되기 전에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의 판세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그동안은 전언 뿐이었는데 대통령의 육성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다"라며 "대통령실이나 국민의힘이 그런 식으로 해명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국민들이 봤을 때 '정말 대통령 부부가 개입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며 "법률적으로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치적으로는 탄핵 사유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실질적인) 탄핵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단초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스모킹건에 다가가는 하나의 단초라 볼 수 있다"고도 진단했습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