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소·고발 난무하는 불신 사회 대한민국

입력 : 2025-01-23 오전 6:00:00
일생 살아오면서 고소나 고발 안 당해 본 사람이 있을까요? 그럼 진짜 온실 안에서 화초처럼 평온하게 살아온 겁니다. 아마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산속에 혼자 사는 ‘자연인’이나 고소·고발에서 자유로웠을 것입니다. 아니 ‘자연인’도 무단으로 공유지나 사유지에 거주한다고 고발당했을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고소나 고발되는 인원이 70만 명을 넘습니다. 대검찰청의 ‘형사사건 동향’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고소사건은 41만6058건이고 피고소인은 60만5090명에 이릅니다. 고발사건은 7만2446건에 피고발인은 10만9021명으로 나타났습니다. 10년이면 700만 명이나 되니 웬만한 사람이면 고소·고발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고소·고발건이 폭주하여 경찰과 검찰은 본연의 범죄 수사와 치안 업무를 충실히 돌볼 여유가 없습니다. 수사관 1명이 100여 건을 한꺼번에 담당하니 깊이 있게 조사할 수 없습니다. 검사는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더미에 파묻혀 한건 한건 제대로 살펴 진상을 가릴 형편이 안됩니다. 민원인도 답답합니다. 형사로 고발했는데 몇 달 동안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는 불만이 태반입니다.
 
형사사건에서 고소와 고발은 비슷하면서 다릅니다. 수사기관에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해 달라는 의사표시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다만, 고소는 피해자가 직접 하는 것이고 고발은 제3자가 하는 것입니다. 고소·고발된 피고인이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지는 비율은 20%가 안 됩니다.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 고소와 고발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고소·고발 건수가 연간 1만 건에 불과합니다. 인구를 고려하면 우리의 100분의 1정도 밖에 안됩니다. 왜 우리나라에 이처럼 고소와 고발이 많은가요?
 
첫째로, 경제적 사기범죄가 많다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기사건은 연간 35만 건에 달합니다. 다단계사기, 보험사기, 주가조작, 중고품 거래사기, 코인사기 등으로 다양합니다. 사기수법이 날로 발전하여 최근에는 전세사기나 보이스 피싱과 같은 신종사기가 기승을 부립니다. 남의 돈을 날로 먹으려는 사기꾼들이 근절되지 않는 한 고소는 줄어들지 않을 겁니다.
 
둘째로 인터넷과 모바일의 대중화에 편승해 소셜미디어(SNS)에서 허위사실 유포, 인신공격, 명예훼손 등의 사이버범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통상 모욕죄는 아는 사람 간에 발생하는 범죄인데 최근에는 사이버공간에서 익명으로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비방하고 모욕하는 행위가 성행합니다. 가해자를 적발해 불법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고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로 사회적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 거칠고 감정적입니다. 개인이나 집단 간에 이권다툼이 발생하면 이를 대화와 타협으로 해소하지 못합니다. 사소한 언쟁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극단으로 치우쳐 고소하는 사태로 치닫습니다. 분쟁이 생기면 일단 고소·고발장부터 내는 ‘묻지마 고발’도 늘었습니다.
 
넷째, 정치적 분열이 고소와 고발을 부추깁니다. 정치인들은 반대파와의 대립을 정치로 풀지 않고 고소·고발을 통해 사법적 판단에 맡깁니다. 강성지지자들이 득세한 정치세력들은 강경 일변도로 충돌하며 서로 상대방을 고소·고발하는 악순환을 이어갑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법제도는 고소·고발이 쉽게 되어 있습니다. 고소인이 제출하는 고소장에는 일방적인 혐의만 담고 있는데 이를 근거로 피고소인은 강제수사 대상이 됩니다. 그래 민사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거나 상대방을 압박하기 위해 형사로 고소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으면 사기혐의로 고소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고소야 당사자가 하는 것이지만 고발은 아무나 해도 됩니다. 고발자에 대한 제한이 없으니 누구나 쉽게 고발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이 있으면 사소한 발언이나 행적을 문제 삼아 얼마든지 고발할 수 있습니다. ‘프로고발러’라는 별칭까지 얻은 일부 시민단체는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고발을 남발합니다.
 
우리나라에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근본적 원인은 사회적 불신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적 자본 지수는 세계 107위로 최하위권에 속합니다. 사회적 자본은 개인 간 신뢰, 국가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등을 나타냅니다. 우리나라의 개인과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중국, 베트남, 태국, 필리핀보다도 낮은 수준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지만 사회적으로는 후진국이라는 것입니다. 참 창피한 일입니다. 한국적 정치와 사회의 병폐가 곪아 터져 나오는 고름과 같은 증상이 바로 고소와 고발인 것입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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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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