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광폭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목되는 조치 중의 하나가 바로 젠더 관련 행정명령인데요. 미 연방정부가 앞으로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성별만 인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먼저 처리하려 할 정도로 미국에서 젠더 문제와 이로 인한 갈등은 심각한 수준인데요. 퀴어축제가 열리면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토마토Pick이 젠더 갈등이 정치적 의제가 된 원인과 향후 미래를 전망했습니다.
젠더 이슈, 인권 문제로 부상
머나먼 과거 시절, 젠더 문제는 주로 여성의 참정권과 같은 성평등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젠더 문제는 성소수자와 성정체성을 중심으로 더욱 폭넓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LGBTQ+ 권리, 포괄적 젠더 평등, 그리고 성적 지향과 관련한 기본적 인권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죠.
현대의 젠더 문제는 개인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과 전통적 가족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 간의 대립으로 양분됐습니다. 세부적으로는 트랜스젠더의 공공화장실 이용 문제, 동성 부부의 법적 지위 인정, 비혼 동거 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정 등 다양한 의제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세계적 흐름은 점차 개방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었는데요. 일례로 대만은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허용하며 중요한 선례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동성혼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나라는 약 39개국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성정체성과 성소수자 문제는 대중화되고 있지만, 각국의 법적·제도적 장치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정치권과 정부를 향한 제도 개선 요구가 날로 증가하는 이유죠.
성정체성 존중과 차별 금지
확대 중이지만, 일부 논란도
소수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사회의 햇빛 아래 두도록 돕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최근까지 세계의 추세였습니다. 지난해 11월 자기 성별을 법원의 허가 없이 스스로 바꿔 등록할 수 있도록 한 독일이 대표적이죠. 미국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연방정부 정책 전반에서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7월 대법원이 동성 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첫 판결을 한 바 있죠. 동성 부부의 사회보장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성소수자에게 조금 더 개방적으로 전향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급진적인 변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도 적지 않기 때문이죠. 제도적 변화로 인해 오히려 불공정이 생기는 경우도 더러 발생했습니다. 특히 체육계에서 이러한 사건들이 조명됐는데요. 지난해 7월 미국에서 열린 여자 사이클 대회에서 트랜스젠더 선수들이 속한 팀이 1~3위를 싹쓸이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세 팀에선 모두 ‘생물학적 남성’선수들이 포함됐죠. 지난 2022년에는 전미대학체육협회 여자부 수영 자유형 종목에서 트랜스젠더 리아 토마스가 우승을 차지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남성적인 근육과 신체능력을 가진 채 여성 대회에 출전해 맹활약한다면, 누군가는 공정성 면에서 억울함을 토로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트럼프 취임, 젠더 정책 유턴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재입성하자마자 젠더 정책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성별은 변경할 수 없는 근본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현실에 기반한다’고 명시된 젠더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게 대표적이죠. 이에 따라 여권이나 비자 발급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 외에 ‘제3의 성’은 선택할 수 없게 됐습니다. 사실 이러한 급진적인 기조 변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때부터 예고됐는데요. 미 하원은 이미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람의 여성 운동경기 참여를 금지하는 '반 트랜스젠더법'을 트럼프 대통령 취임도 전인 지난 14일 통과시켰습니다. 미군 내에서 트랜스젠더 군인을 배제하는 행정명령이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바이든 정부 시절 강화된 성소수자 정책을 대대적으로 폐기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는데요. 이에 따라 지난 정부가 시행하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들이 대거 후퇴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국 유턴, 국내에도 여파?
기업들도 벌써 이에 발맞추고 있는데요. 메타, 맥도날드, 월마트 등 미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대기업들은 이미 인종, 성적 지향, 나이 등과 관련된 다양성과 포용성을 지향하던 DEI 정책들을 축소하거나 폐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수적 기조를 따라가기 시작한 것이죠. 미국에 본사를 둔 대기업들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해외 여러 나라에도 지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본사의 정책 변화가 해외 각국 지사들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나라의 성소수자 관련 갈등도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 퀴어 축제 개최 등 성소수자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는 상황입니다. 특히 기독교 단체와 결합한 보수층에서는 성소수자 권리 확대에 반발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미국에서 성소수자 권리를 제한하는 선례가 등장하면서 한국에서도 이러한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나아가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길 수도 있겠습니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정국에 성소수자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